스리랑카
불현듯 머리에 스친 이 나라.
‘언젠가는 가봐야지 ~~~’하는 나의 버킷 리스트에서도 빠졌던 이 나라가 왜 갑자기 내 뇌를 심하게 때렸을까?
“이제 곧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에 도착하니 의자는 제 자리로, 안전벨트는 매세요.”
싱가포르 공항을 이륙하자마자 주는 기내식을 먹고 잠깐 졸았는데 벌써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 도착이다. 콜롬보 반다라나이케 국제공항은 넓고 깨끗하여 내가 가졌던 덜 사는 나라에 대한 선입견은 초전에 박살이 났고 공항 직원들의 밝은 웃음과 친절한 태도로 스리랑카와의 사랑이 시작되었다.
청사 밖으로 나오니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는 고온 다습한 공기로 순간 당황하였다.
‘분명 12월이 스리랑카 여행의 적기이고 시원하다고 했는데. . .’
호텔에서 보낸 픽업 기사가 한 시간 후 도착하는 비행기로 오는 투숙객과 같이 가면 안되겠냐 해서 쿨하게 허락하고 공항 마실에 나섰다.
[릭샤 / 오토바이를 개조한 택시]
국제공항인데도 릭샤(동남아에서는 보통 툭툭이라고 불리는 오토바이를 개조한 운송수단)도 택시, 봉고, 버스 사이에서 약간의 부조화를 이루며 몇 대 주차되어 있다. 늘 그러하듯이 공항 구석에는 여러 나라에서 온 국가대표 담배꾼들이 뿜어내는 연기가 글로벌 하게 피어 오르고 다른 한 켠에서는 수학여행을 떠나는 여고생들의 하이톤 쫑알거림이 버무려져서 시끌벅적한게 여느 나라 국제공항과 유사하다.
구체적인 계획없이 도착한 스리랑카의 여행일정은 지도를 펼치고 가 볼만한 곳을 상세히 설명한 이쁜이 호텔리어의 관심 순위에 따라 내 동선이 결정되었다.
콜롬보에서 40km 떨어진 세계에서 유일한 <피나왈라 코끼리 고아원>의 방문이 우선 순위 1번이었다. 이 고아원은 야생에서 다치거나 어미에게서 버려진 새끼 코끼리를 거두어 자생할 수 있게 훈련시켜 숲으로 돌려보낸다고 하는데 지금은 약 100마리 정도가 있다고 한다.
[피나왈라 코끼리 고아원 / 보호중인 코끼리 약 100마리 ]
[코끼리와 필자 ]
코끼리들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근처 강으로 목욕을 나오는데 이 시간에 맞추어 경찰과 관리인 수명이 도로를 통제하여 코끼리들이 불편함 없이 강가로 갈수 있도록 안내를 한다. 이러한 코끼리 이동 행렬을 보려는 관광객들이 한꺼번에 몰려 예민한 코끼리들이 난동을 필까 일정 거리를 유지시킨다. 대부분의 코끼리들은 강에서 자율적(?)으로 물놀이를 겸한 목욕을 하는데 나이 먹은 몇 마리는 관리인들이 손수 목욕을 시켜준다.
이 때 관리인들 손도 덜 겸 부업으로 약간의 비용을 지불하면 코끼리를 목욕시키는데 참여 할 수 있는데 나도 동참했다. 주의할 점은 코끼리에게 절대로 먹을 것을 주면 안된다. 코끼리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싶으면 Donation Box에 현금을 넣어주면 되는데 이거이 관리인들 술값이 되지는 않을까?
‘별 걱정을 다하셔. 그래서 니는 낼껴 말껴?’
까칠하게 느껴지는 잔털과 촘촘하게 주름 진 코끼리 피부의 감촉이 아직도 손에 남아 있는 듯하다.
시기리야로 가는 교통요지 담불라 마을에 숙소를 정하고 내일 새벽 시기리야 위로 떠오르는 일출을 보기 위해 맞은 편에 위치한 피두랑갈러 바위로 가기 위해 릭샤를 예약하려는데 선금을 달라고 한다.
‘야가 누구를 졸로 보나?’
‘해외여행시 모든 비용 지불은 끝나고 나서 한다.’는 것이 경험에서 나온 나의 기본원칙이다.
결국 릭샤 기사가 호텔 로비까지 쫓아와 내일 오겠다고 하는 것을 매몰차게 협상 결렬을 선언하고 호텔 승용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나도 한다면 하는 놈이여? 어디다 장난을 치려고 까불고 있쓰.’
‘우탕탕 쾅쾅 . . . 쏴아~~~.’
호텔 창문을 때리는 빗줄기가 엄청나게 박력 있다. 새벽 4시 조금 넘었는데 한시간 뒤에는 그칠까?
걱정을 하다 깜빡했는지 모닝콜 소리에 깜짝 놀란다.
“Mr.한! 비가 많이 오는데 갈거에유~?” 그러면서 깜깜한데 랜튼 불빛에 의지해 바위를 오르기 때문에 위험하니 가지 않는게 좋을 것 같다고 조언을 한다. ‘그러자. 위험을 감수하면서 까지 갈 정도는 아닐거야.’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내쳐 잤다. 다행히 비는 그쳤지만 조금이라도 맘에 안들면 다시 하늘문을 열어 비를 뿌릴 것처럼 구름이 잔뜩 인상을 쓰고 있다. 늦게 일어나서 호텔에서 챙겨주는 아침밥도 든든히 먹고 호텔 승용차로 30분 거리의 시기리야로 떠난다.
[중앙도로에서 본 시기리야 성채 / 바위높이만 200m]
“Mr.한 저기가 호수에서 두 바위가 다 보이는 포토 포인트인데 잠깐 세워줄까유~?”
“Why not? Thanks.”
넓은 호수 건너편으로 시기리야(사자 바위란 뜻)와 피두랑갈러 바위가 보인다. 멋진 포토존이라고 칭찬하며 엄지척을 해주었더니 기사(=호텔 오너 사장)의 뿌듯한 미소가 얼굴에 번진다.
“이따 릭샤 타고 호텔로 돌아갈 것이니 이제 가도 돼. 이따 호텔에서 봐.”
“Okay. 필요하면 전화주셔유~ 그리고 잠깐만.”
금새 릭샤 기사를 데리고 오더니 가격도 싸게 흥정해 놨으니 이것 타고 호텔로 오면 된다고 한다. 언젠가부터 사람의 겉모습을 보고 인성을 판단하는 버릇이 생기고 그게 딱히 맞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짐작한대로 맞는 것 같다. 어눌한 영어에 늘어지는 말투가 우리네 충청도 어르신의 사투리 같아 더욱 구수하고 친근하다.
‘찌질아. 인상보고 인성을 볼 수 있다는게 바로 연륜인데 니가 나이를 그만큼 드셨다는겨.’
릭샤 기사가 출입구까지 안내를 하겠다고 나서는데 사양하고 주변 경치를 보면서 사진도 찍으며 여유롭게 마실을 나서는데 이게 자유여행의 매력 아니겠나.
‘내가 찐 주인이 되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몇 개나 될까?’
정글 사이로 쭉 뻗은 우리네 논두렁길 같은 비포장 먼지길을 걸어 입구에 도착하니 외국인 단체 여행객과 여고생 단체팀 등 으로 붐비고 있다. 안내인이 저기 창구로 가서 <시기리야 박물관 입장권>을 사라고 한다.
[시기리야 성채 매표소]
“여보슈 난 박물관 관람 온 것이 아니라 시기리야 성채 보러 왔다고요.”
“여기서부터 저기 사자바위 정상 까지가 모두 박물관여. 그러니까 언능 티켓이나 사오슈”
시기리야 성채는 5세기 경 싱할리왕조 65대왕 카샤파왕이 건설하였고 영국 군인에 의해 발견되어 1982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이 성채를 건설한 카샤파왕은 적통인 이복동생 목갈라나에게 왕위를 계승하는 것에 반하여 반란을 일으켜 부왕 다투세나를 생매장하는 만행을 저질렀고 동생 목갈라나는 살해 위험을 피해 남인도로 망명하였다.
이러한 카샤파왕의 잔혹함에 화가 난 민심과 동생 목갈라나의 보복이 두려워 난공불락의 요새도시를 건설하게 되었다. 카샤파왕은 건축과 예술에 조예가 깊어 성채로 오르는 길 절벽바위에 <거울의 벽 Mirror’s wall>을 만들어 <천상의 여인도 heavenly Maidens>와 싱할라어로 압살라 요정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 신화 등을 그려 놓았고 그 일부가 지금까지 남아있다.
<사자 발톱 테라스 Lion’s Paw Terrace >의 성채 입구에는 사자상을 만들어 그 입을 통해서만 성채에 오르게 하는 등 침략에 대비하여 완벽한 방어를 위한 성채를 만들었다. 이 성채는 7년만에 완공이 되었고 그 후 11년 후에 동생 목갈라나와의 전쟁에서 패배함으로 카샤파왕은 바위에서 투신 자살을 하는 비운을 맞았다.
[궁전터 /시기리야 사자발톱 광장으로 오르다 보면 군데군데 이런 왕궁터가 있다]
궁녀 출신의 엄마를 둔 장자 카샤파왕과 왕비가 낳은 적통 이복동생 목갈라나와의 권력에 대한 욕심이 한 가족의 운명을 이렇게 비극적으로 만들었다. 이런 비극이 없었으면 시기리야라는 불가사이 유적이 없었겠지? 이런 비극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찌질아! 쓸데없는 오지랖 떨지 말고 오르는 계단이 모두 외길이라니 단체팀들 와서 밀리기 전에 언능 요새로 올라가자.’
드넓은 정글에 200m 높이로 우뚝 솟아 있는 시기리야 바위를 중심으로 뱅글 돌아가며 70Ha의 면적에 성벽과 해자로 겹겹 장애물을 만들어 시기리야로 오르는 입구까지도 쉽게 접근할 수 없게 만들었음을 보고 얼마나 두려웠으면 저 높은 바위 위 성채에 살면서도 이렇게 까지 만들었을까 하는 마음에 속이 먹먹하다.
‘도대체 뭐를 위해서 이런 공포와 두려움을 안고 하루하루어떻게 보냈을까?’
단체팀 가이드 설명을 훔쳐 들으니 그 옛날 여기 해자에는 악어를 길렀다고 하는데 . . . 빠지면 어떻게 되었을 지는 그대들 상상의 몫이다.
[외곽 성벽 해자]
[성채를 빙둘러서 해자를 만들어 놓았다. 해자에는 악어를 길렀다.
['여름궁전 터' /지금은 벽돌기단만 남아있다]
해자 위로 설치된 다리를 건너니 깔끔하게 정리된 일직선 도로 앞으로 시기리야가 보이고 몇 개의 연못으로 이루어진 물의 정원(water garden) 그리고 왕의 여름별장(summer palace)이 있다. 중앙도로 양옆으로 물의 정원과 지금은 터만 남아있는 여름궁전이 완벽한 대칭으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고 그 당시 만들어 놨다는 분수정원에는 지금도 물을 뽀골뽀골 뿜으며 자신의 존재를 뽐내고 있다.
중앙도로 끝에 도달하면 바위 정원(boulder garden)을 만나는데 큰 바위 두개가 엇갈려 동굴 입구 모양을 하고 있고 유사시에는 커다란 바위로 입구를 막아 적들이 성채로 올라오지 못하도록 하였다.
해가 구름에 가려져는 있지만 정글에서 간간히 불어오는 습하고 찝찝한 더운 공기에 숨이 막히고 옷은 땀으로 비에 젖은 듯 무겁기만 하다.
['바위정원'/ 유사시 큰 바위로 입구를 막아 적의 침입을 저지했다고 한다]
바위 정원 밑에서 성채를 쳐다보니 거의 직각의 경사에 만들어 놓은 가파른 계단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나보다 먼저 이곳을 다녀간 선배님들의 여행수기를 보면 입장료가 비싸서 시기리야 배경으로 사진만 찍고 갔다 하여 짠돌과 짠순이라고 은근 무시를 하였는데 꼭 비싼 입장료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 네 장마철 같은 무더운 날씨에 가파른 계단을 오른다고 하면 체력 약한 분들은 당연 망설여 질 것 같다. 암튼 새삼스레 오르지 않는다는 과감한 결정을 내린 그 분들이 한없이 부럽다. 비싼 돈 내면서까지 할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높은 곳 오르기를 좋아하는 찌질이는 꼭 한다. 나중에 후회를 할 지라도...
[ 성채 올라가는 계단 / 더운 날씨에 초입부터 진이 빠진다]
오르는 길은 꺽다리 나무와 바위로 그늘이 져서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땀 흐르는 것까지는 막아주지는 못하였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서 내려다 보이는 정글은 멋있다기 보다는 그들의 처절했던 삶의 흔적 때문인지 별 감흥이 없다. 아니 실제로도 별 것 없다.
‘궁금햐? 그럼 님이 직접 와보시던가.’
“hey Mr.! ticket please”
“아까 입구에서 보여줬는데 뭔 티켓?”
호주머니에서 땀에 쩔어 찢어지기 일보직전의 티켓을 보여주니 통과란다. ‘이게 뭔 시스템여?’ 돈 받고 가라 해도 망설일 가파른 계단의 외길인데 표 검사라니 게다가 검표원이 세 명씩이나 지키고 있다. 고용창출?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 나면 낭떠러지에 놓여진 잔도 끝자락에 티켓 검사대가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게 수평으로 놓여진 잔도를 걸으며 충분히 숨을 고르고 난 뒤에 검사대가 있다는 것이다.
[ 검표원 / 3명씩이나 지키고 서 있다]
만약 힘들게 계단을 오르며 땡칠이 되었을 때 티켓을 보이라고 하였으면 아마도 검사원을 절벽 밑으로 밀어버렸을 것 같다. 안전을 위해 철망으로 둘러 싼 나사모양의 수직 계단을 오르려 쳐다보니 한숨부터 나온다. ‘만들어 놓은 계단을 오르기에도 힘든 이런 곳으로 어떻게 수만개에 달하는 건축 자제용 대리석과 벽돌을 날랐을까?’ 그러기에 세계 8대 불가사의 유적이겠지?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모든 이가 지쳐 힘들지만 140m 높이에 위치한 <거울의 벽>에는 <천상의 여인 heavenly Maidens> 또는 <압살라의 요정>으로 알려진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프레스코 벽화와 지렁이를 그려 놓은 듯한 낙서 같은 싱할라어의 글자가 있는데 이는 압살라 여인에 대한 칭송과 싯구를 적어 놓은 것이란다. ‘이렇게 가파른 바위벽에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감탄하며 잠시 피곤을 놓아준다.
['거울의 벽'/ 자세히 보면 압살라 여인에 대한 찬사와 싯귀가 적혀 있다]
바위에 그려진 천상계의 여인은 가느러한 눈과 입가에는 엷은 미소를 그리고 머리와 가슴에는 화려한 장신구로 장식한 채 상의를 입지 않고 풍만한 가슴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oh sexy qua (= very sexy)!’ 그런데 왜 갑작스레 베트남어가 나오지?
‘베트남어도 제대로 못하면서 니 이럴 때는 꼭 티를 내더라.’
['천상의 여인들'/ 높이 140m바위 절벽에 그려져 있다]
처음에는 500명의 여인이 그려져 있었으나 현재는 18명의 여인만이 남아 있다고 한다. 몇 개의 그림은 아직도 화려한 색채와 형상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또 한번 대단한 문화유산이라는 것을 느낀다. 눈으로 보면서 사진을 찍으며 부지런을 떨고 있는데 누가 소리를 버럭 지른다.
“hey. Mr.! No photo”
“찍지 말란 표시 없잖여.”
“저기 표 검사하는데 <no Photography>라는 표지판 있는디.”
“그랴? 못봤는데 쏘리하고 이제부터 안찍을께. Okay?”
사진 촬영금지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지킴이가 보이지 않아서 모른 척하고 재빠르게 샷을 날려 반 정도는 사진으로, 나머지는 눈에 담았다. 카메라를 빼앗아 사진을 지우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휴~우’하는 안심의 심호흡과 동시에 몇 년 전 모로코 왕궁 수비대에게 카메라를 빼앗겨 왕궁 사진을 몽조리 지움을 당했던 가슴 아팠던 기억에 순간 움찔했다. ‘그 모로코 군인 스키들 정말 나빠.’
직벽의 계단을 오르고 나서 잠시 숨을 고르며 걸으니 <사자 발톱 테라스 Lion’s Paw Terrace>가 나타났다. 그런데 이곳이 끝이 아니라 눈앞에 보이는 가파른 계단을 20~30분 더 올라야 성채에 도달하는 시작점이다.
['사자발톱' 광장/ 사자의 형상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두 발만 남아 있다]
‘아이고! 아주 찌질이 잡기로 작정을 하셨구먼.’
넋 놓고 쉬면서 물을 찾았더니 빈통이다. 두리번 거리다 보니 테라스 한 귀퉁이에 기념품 가게가 보여 뛰다시피 가서 시원한 물을 달라 하니 주인 아주매 曰 “시원한 물은 없고 지금은 미지근한 물이 니 건강에 조응겨.” 하며 완전 배짱 장사이다.
‘찌질아! 고집 피지 말고 일사병 오기 전에 냉큼 물 사서 마셔.’
그 당시 화려하고 웅장하였을 사자의 형상은 세월의 풍파에 흔적 없고 지금은 발톱 3개를 갖은 다리 두 개만이 초라하게 남아 있다. 사자 형상을 만들어 불만과 불신을 가지고 있는 백성에게 왕으로서 위엄과 권위를 가지려 했다는데 과연 이 사자 형상으로 백성에게 원하는 것을 얻었을까? 결국 사자도 백성들의 힘을 빌어 만든 것 아닌가?
하늘에서는 곧 비라도 내릴 듯 구름이 잔뜩 끼여 저기압의 무거운 공기로 바람 한점 없는 가운데 경사 60도가 넘는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서 몇 번을 쉬었는지 모른다. 쓰러지기 일보 직전에 도착한 성채에 올라서니 몇몇 여행객들이 평지에 외롭게 놓여진 두 개의 계단에 올라 생쇼를 하며 사진을 찍는다.
“어이. 학생! 왜 거기 올라 사진을 찍능겨?”
“아~ 여기가 성채에 오르는 마지막 계단이에요. 요게 1201번째 그리고 이게 1202번째.”
[성채정상 광장/가운데 두 개의 계단이 1201번째 그리고 마지막 1202번째 ! 계단]
입구에서 만났던 여고생이 자세하게 설명을 해준다. 이곳에 오르는 계단이 1,200개인데 지금 눈앞에 놓여진 두개의 계단을 포함해서 1,202개의 계단이란다. 나도 폴짝 뛰어올라 포즈를 취했다. 멋진 사진을 은근 기대하며 그 여고생에게 부탁했는데 . . . 돌아와 사진 정리를 하는데 잘생긴 찌질이는 온데간데 없고 땅에서 방금 튀어나온 시커먼 악귀만 보인다. 아이고 맙소사. 자기 친구가 사진 찍는다고 여고생들이 몰려왔었는데 순간 찍녀(여자 찍사?)의 팔을 친 것 같다.
[수영장 / 내려가는 돌계단은 화강암을 쪼아서 만들었다.]
너른 정글 관목 숲에 높이 200m로 솟은 바위 꼭대기의 넓이는 대략 2ha(약 6천평)로 평평한 마당이 계단식으로 구분되어 있고 왕궁, 정원, 연회장, 테라스의 터에는 정교하게 쌓여진 벽돌담만이 남아 있다. 수영장(또는 저수지)은 길이 90m, 폭 68m, 깊이 7m로 화강암을 파서 물의 누수가 없도록 하였고 이곳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는 세공의 잘 되어 맨들 거리는 돌의자가 왕을 위해 마련되어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코끼리를 이용한 승강기가 있었고 수압에 이용하여 바위 밑에서 이곳까지 물을 공급하였다고 한다.
[ '왕의 의자'/ 의자 위로 홈을 파고 수로를 만들었다. 수로가 에어컨 역할을 했다고 함]
“where are you come from?”
“south Korea”
힘 들어 계단에 걸터 앉아 수영장을 보며 ‘압살라 여인들이 저기서 춤을 추었겠지?’ ‘오늘은 누구와 춤을 한번 땡길까?’ 하며 즐거운 왕놀이 꿈을 꾸고 있는데 누군가의 호구조사로 망가졌다. ‘우씨 누구여?’ 짜증스럽게 돌아보니 아까 내게 계단 설명을 자세히 해주었던 여고생 일행과 여선생이 인사를 한다. 콜롬보에서 사립고등학교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왔고 내일 돌아간다며 한국의 K-pop, K-drama, 한국 문화 그리고 자기 나라의 첫인상(first impression) 등등 뭐가 그리 궁금한 게 많은 지 조잘조잘 묻는데 짧은 영어로 대답 하려고 잔머리를 굴리다 보니 진이 빠진다.
‘싱싱한 얼라들 기를 뺏아야지 얼마 남지도 않은 내 기 빨리면 안되는디. . . 정신차려 찌질아!’
선생님이 나의 피곤함을 눈치 챘는지 애들에게 다른 곳 구경하라고 떼어 보낸다. 이 분은 스코틀랜드 출신이며 이 학교 영어교사로 남편은 주 스리랑카 영국 대사관에 근무하고 있단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통에 보리수나무 밑으로 피해 우비를 입었는데 금새 그친다. 하늘을 보니 소나기가 얼마 지나지 않아 쏟아질 것 같아 여학생들과 수다를 떨며 서둘러 하산을 하였다. 선생님에게는 학생들 몰래 <천원의 행복선물>로 낭군님 것 포함해서 열쇠고리 2개를 선물하였더니 한국 대사관 직원에게 자랑하겠다고 한다.
설마 한국 대사관 직원이 ‘그거 천원짜리 싸구려’라고 이야기 하지는 않겠지? 워낙에 눈치 없는 외교관이 많아서 은근 걱정된다. 단 교민 보호와 국위 선양을 위해 열심이신 외교관님은 열외임을 알려드립니다.
시기리야 구경을 끝내고 내려오니 점심시간을 한참 넘긴 3시 즈음이다. 그런데 오늘따라 평소와는 달리 배꼽시계가 점잔을 떨고 있다. 아마도 더위에 지쳐 마신 물로 배를 채워서일게다. 가까운 식당에서 시원한 콜라(맥주 또는 주류는 허가된 식당에서만 판다.)에 달걀 오물렛으로 간단히 먹고 멀지 않은 곳에 학교가 있다 하여 길을 나섰다. 그런데 언제 나를 봤는지 릭샤 기사가 식당 밖에서 서성대고 있다. 첫인상이 좋았는데 역시 느낌대로 아주 성실한 사람 같다. ‘미안한디 조금만 기둘려줘유. 미스터 릭샤.’
학교로 가는 길가의 숲에서 원숭이 몇 마리가 고개를 빼꼼이 내놓고 나를 쳐다보고 있다.
‘이 놈들이 뭘 그리 쳐다봐. 쪽수가 많아도 니들은 원숭이고 내는 사람이니 내가 니들을 구경하는겨’ 원숭이와 농담 따먹기를 하는데 ‘딸랑 딸랑’하는 방울소리가 들려 뒤돌아보니 코끼리 투어를 하는 여행객들이다. 코끼리 등판에 올라 앉아 거만한 얼굴로 나를 보며 손을 흔드는 커플에게 내키지는 않지만 무안 해할까 마지못해 손을 흔들어 답해 준다.
‘니들이 코끼리 타면 왕과 왕비가 된 것 같냐? 이 모지리들아.’
코끼리 등에 사람을 태우는 것도 비위가 상하는데 몰이꾼들이면 모두 들고 다니는 쇠꼬챙이 막대에 더욱 기분이 상한다.
학교에 도착하니 수업이 끝난 꼬맹이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다. 선생님 계신 곳으로 안내를 부탁하였더니 떼거리로 나를 밀며 교무실로 데려간다.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애들과 이야기도 하고 사진도 찍고 싶다고 하니 흔쾌히 허락을 한다. ‘Oh ye. 선생님 이뻐유.’ 꼬맹이들이 껌 딱지처럼 붙어 다니는 통에 <천원의 행복선물>을 꼬맹이들 몰래 선생님만 드리려고 진땀을 뺏다.
[스리랑카의 미래 , 초등학생들의 귀여운 모습들]
190년의 영국 식민지배를 받은 탓에 영어가 기본 언어라 초딩 꼬맹이와 중딩 언니들과의 소통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카메라 렌즈와 눈만 마주치면 온갖 짓궂은 표정을 연출해주고 찍힌 사진을 액정모니터로 보여주면 또 찍으라고 재미있는 포즈를 취해주는 탤런트 잠재력이 있는 유쾌한 꼬맹이들이다. 이런 꼬마 요정과의 즐거웠던 시간이 지금도 스리랑카 여행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추억으로 기억된다.
동양의 마추픽추라고 불리며 세계 8대 불가사이라고 하는 시기리야.
아픈 가족사의 역사 위에 수많은 백성들의 피와 땀 그리고 주검들로 건축된 이 유적이 지금 어렵게 사는 스리랑카인에게 최고 수익원의 관광자원이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Eco-Times 한용성 여행작가 /글.촬영
[前 금호타이어 사장. 現 케이프투자증권(주) 고문]
생태환경뉴스 Eco-Times / 홈페이지: eenew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