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란바타르 시내는 아직도 푸나무의 모양이 황량하고 두터운 겨울 옷을 입고 있는 듯하다. 동남쪽 사막 지역 그곳은 남녘이라 봄이 빨리 와 있을 것 같다. 긴 겨울에서 벗어나 봄을 조금이라도 빨리 만나고 싶다. 도르노고비(Dorno Gobi, 동고비)의 ‘고비’는 몽골어로 ‘황량한 땅’이란 뜻이다.
몽골어 개인교수인 니마(Nyamaa)와는 오래전에 약속한 터라, 샤인샨드(Shainshand)로 함께 가기 위해 울란바타르 기차역에서 아침 9시 30분에 만나기로 해서 일찌감치 숙소를 나선다. 오늘따라 하늘은 흐리고 역으로 가는 길은 갑자기 내린 비로 흙탕물이 고였다. 길 떠나는 나그네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며칠 전에 여권 제시를 하면서 기차표를 사고 돈을 지불했는데 그때 영수증을 받지 않아 지금 받으려고 한다고 몇 차례 설명해도 엉뚱한 반응을 한다. 그녀가 영어를 할 줄 아는 여인과 핸드폰 통화를 시켜주었고 나는 내 의도를 말한다. 그런데도 제대로 의사전달이 되지 않는다. 이 답답함이란.
지금까지 내 주변에는 몽골어 통역이 있거나 영어로 의사소통이 쉬운 인물들이 있어서 불편함을 못 느꼈다. 그러나 지금처럼 몽골인들 속에서 간단한 몽골어라도 못하면 벙어리 냉가슴 앓듯 도무지 답답하다. 그러는 사이에 니마 교수가 도착했다. 그녀에게 나의 뜻을 전하니, 기차표를 내가 샀으니 이 기차표가 영수증을 대신할 수 있다고 간단하게 설명해 준다. 난 이곳 창구 여직원에게 억지를 피운 셈이다. 몽골 법을 잘 몰라 생긴 에피소드이다.
아침 9시 45분에 열차문이 열리는 시간을 기다린다. 아침 식사를 하지 못한 탓에 시장기를 느껴 역 구내식당에서 간단히 수테체(몽골 전통 밀크 티) 한 잔을 사 마신다. 기차는 언제부턴가 이미 플랫 홈에서 승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비는 하염없이 부슬부슬 내리고 있다.
1956년에 철도가 개통됐으니 승객들이 기다리는 역사 안팤은 고색스런 분위기를 풍긴다. 러시아와 중국을 오가는 몽골횡단철도(Trans-Mongolian Railway)의 중간기착지 겸 출발지인 울란바타르 역이라 듀티프리 샵(duty free shop, 면세점)도 보인다. 아하, 내가 탈 열차가 남북으로 국경을 넘나드는 국제열차이구나. 내 의식의 지평이 좁은 것인가.
가축보호는 이들이 언제, 어디서나 신경 쓰는 일이다. 가축이 철로 변의 풀밭을 넘나드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함이리라. 기차는 남쪽으로 향하면서 초이르(Choir) 역에 선다. 서너 시간 걸려 도착한 듯하다. 4인 1실의 쿠페(coupe, compartment, 한 칸의 객실) 안은 승객이 없다. 이 공간은 서민들이 이용하기에 조금 비싼 편이라, 나와 니마가 쿠페 한 칸을 전세낸 것 같다.
긴 복도를 따라 열차안내원인 몽골 여성은 부지런히 움직인다. 그녀는 기차표를 거두어 가고, 차와 뜨거운 물을 여행객에게 서비스하고, 그리고 잠자는 승객을 위해 긴 좌석 위에 까는 쉬트가 든 비닐봉지를 갖다 준다. 장거리 여행을 위한 배려이다. 그리고 그녀는 복도 한 켠에 부착된 작은 열탕 기구를 돌본다. 뜨거운 마실 물을 공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 불가리아의 소피아(Sofia)에서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으로부터 분리, 독립한 세르비아 베오그라드(Beograd) 역까지 하루 종일 이 쿠페식 열차를 탔던 기억이 새롭다. 차가 정거하면 그녀 자신이 근무하는 방과 화장실 문을 잠그고 플랫홈에 내려, 중간 중간에 서 있는 열차승무원들, 기관사와 깃발을 흔들며 수신호를 하고 차가 출발할 때까지 주변을 살피며 대기한다. 부지런한 전문직 여성들이다. 씩씩한 모습이다.
러시아 이르쿠츠크에 열차 기관사를 양성하는 유명한 철도대학이 있다는 얘길 들었다. 몽골에도 이런 열차승무원 양성 전문 교육기관이 있으리라. 아직 날씨가 추워 이들은 푸른색 유니폼 코트를 입고 머리엔 비스듬히 캡을 쓰고 있다. 절도가 있어 보이고 사회주의 체제 시절의 분위기를 풍기는 것 같기도 하다. 유니폼 패션이 육중한 기차의 차체와 대조적이라, 승무원들이 멋있어 보인다.
쿠페와 다르게 지나는 차량은 기차 삯이 싼 서민들이 타는 열차인 듯, 좌석이 오밀조밀하게 배열되어 있고 승객들의 모습도 조금은 초라하다. 이윽고 한 칸에 카트에 간식과 과자를 싣고 파는, 우리네 옛 홍익회 판매원과 같은 사내가 보인다. 그를 피해 나는 다음 열차 칸으로 이동하려는 찰나, 니마가 ‘뷔페’라고 말한다.
비가 잦아들면서 잠간 동안 섰다 떠나는 간이역 마을풍경이 한가롭기 그지없다. 사막지대의 몽골 주민들. 이들이 누런 황톳빛 사막에서 살고 있다. 마치 내가 철저한 이방인이 된 느낌이다. 나에겐 그들이 이방인으로 보이는데 말이다. 주관과 객관의 차이이고 전혀 다른 인식작용의 결과이다.
내가 그들을 응시하면 그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이곳을 지키고 사는 태생적으로 사막의 주인이다. 사막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이곳 간이역 차창에서 내다본 풍경은 오히려 살갑게 보인다. 꼬마 녀석들이 재미있게 농구를 하고 있고 어떤 녀석은 자전거를 타고 있으니. 비가 내려 사막 땅과 대기가 온통 누렇게 물들어 있다.
대지를 가르는 기차는 아이락 역에 섰다가 두 시간을 더 달린다. 이제는 완전 모래땅이다. 지금부터는 내가 익히 알고 있었고, 보고 싶었던 바로 그 고비(Gobi) 사막이다. 모래땅에도 몽골인들은 산다. 이제 비가 그쳤다. 간혹 미국의 모하비(Mojave) 사막에서 보았던 텀블링위드(tumbling weed), 마른풀 덩이가 바람에 못 이겨 간간이 구르고 있다. 어린 시절 서부영화에서 봤던 그 소품이다. 아마 간이역까지 포함해 스무 개 이상의 역을 통과해 온 듯하다.
지금부터는 인구 2만의 도시 샤인샨드(Shainshand)의 속살을 볼 차례이다. 여행은 현장에 막 도착했을 때가 가장 마음이 설렌다. 낯선 곳, 그곳은 미지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샤인샨드 역두에 내려 차를 타고 가는데 차창 밖의 공기가 후끈 단 화롯불처럼 느껴진다. 쏴한 사막의 저녁 공기가 아니다. 어찌 된 일인가?
호텔로 향하는 차 안에서 보는 샤인샨드는 역 주변이 개발이 덜 된 지역이라 그런지, 시가 모습이 휑하고 건물들이 듬성듬성 들어서 있다. 최근 일어난 산불 탓에 뜨거운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고 한다. 모래 먼지가 마구 눈 앞을 가릴 정도로 휭휭 휘몰아쳐 차가 흔들릴 정도이다. 그래도 호텔 주위에 듬성듬성 서 있는 나무는 연두색을 띠고 있다. 봄옷을 입고 있다.
Eco-Times 금웅명 고문producerkum@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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