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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의 책갈피 (7)] -소통의 전제조건-

Eco-Times | 기사입력 2023/06/14 [20:20]

[최원영의 책갈피 (7)] -소통의 전제조건-

Eco-Times | 입력 : 2023/06/14 [20:20]

 

 

 



 

장자의 우화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사람은 고기를 먹고, 사슴은 풀을 뜯어 먹고, 지네는 뱀을 잡아먹고, 매는 쥐를 즐겨 먹는다네. 이 네 가지 입맛 중에서 어떤 것이 가장 맛있는지 말할 수 있을까? 아마 어려울 걸세.”

 

또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최고의 미녀로 꼽는 모장이나 여희라고 해도, 물고기들이 그 여인들을 보면 돌 밑으로 숨어들 것이고, 새들이 보면 하늘 높이 날아가 버릴 것이고, 사슴이 보면 놀라 도망칠 것이네. 이 네 가지 동물에게 가장 아름다운 것은 무엇이겠는가?”

 

‘내’가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볼까요? 아름답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을 겁니다. 사람마다 아름다움을 보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회를 즐겨 먹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육식을 즐기는 사람도 있는 것처럼 맛있다는 것 또한 하나만의 기준으로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맛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도 꼭 맛있어해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옳고 그름의 선택이 아니라 그저 취향이 다를 뿐입니다. 그래서 그냥 상대의 판단을 존중해주면 그만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옳다고 믿고 있는 신념을 모두에게 적용하면 어떨까요? 세상을 살아가는 데 ‘정직’이 최고의 덕목이라고 굳게 믿는 사람이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사람을 비난할 수 있을까요? 거꾸로 선의의 거짓말이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이 정직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을 비난만 할 수 있을까요?

 

맞습니다. 두 사람은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다를’ 뿐입니다. 그래서 어느 신념이 옳으냐의 질문은 틀린 질문입니다. 옳고 그름의 다툼은 갈등만 조성할 뿐입니다. 두 사람 모두 맞는 말을 하는 것이니까요. 이렇게 사람마다 자신이 선호하는 것들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옳은 말만 한다”라는 격언이 매우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을 펼쳐나가다 보면, 내가 옳다고 판단한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듭니다. 어느 신부님은 “이기심은 나쁜 게 아닙니다.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겠다는 마음이 이기심인데, 그게 뭐가 나쁘겠어요? 그러나 이기심이 나쁜 것은 자신의 그런 이기심을 남들에게 강요하는 거예요.”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만이 ‘절대적 진리’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착각을 반복해서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믿고 있던 것을 ‘사실’이라고 확신하게 됩니다. 이렇게 ‘사실’이라고 착각한 것이 ‘신념’으로 굳어져서, 다른 생각이나 주장들에 대해서는 아예 눈과 귀를 닫아 버립니다. 이때부터는 소통 자체가 되지 않을 겁니다. 소통이 안 되니 당연히 갈등과 분노로 가득한 적대적 관계가 되어 불행한 삶을 살 수밖에 없겠지요.

 

어떻게 하면 이런 착각의 늪, 믿음의 오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중국의 고사에서 그 지혜를 찾을 수 있습니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는 전쟁이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니 백성들의 삶은 참으로 고통스러웠을 겁니다. 어느 한 곳에 정착해서 편안하게 살 수가 없으니 수시로 피난을 가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늘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재산을 팔아 금과 같이 부피가 작은 것들로 마련함으로써 피난을 대비했습니다.

 

그런데 임공이라는 상인은 금 대신에 남들이 내다 파는 쌀과 같은 곡물을 사두었습니다. 세월이 흐르자 곡물 가격이 무척 올라 그는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훗날 한나라 유방이 임공을 불러 큰 부자가 된 비결을 묻자, 그는 답했습니다.

“앞으로 가격이 오를 것을 미리 사서 가지고 있다가, 가격이 올랐을 때 팔았을 뿐입니다.”

임공의 깊은 생각을 아직 간파하지 못한 유방이 “가격이 오를 거라고 판단한 기준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다시 이렇게 설명해주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비슷한 생각을 하고 삽니다. 그러나 저는 그들과는 정반대로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드리면, 남월 사람들은 신발을 신고 다니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발장수들은 그곳에 가서 신발을 팔 생각을 하지 않지요.

 

그러나 저는 달리 생각을 하고, 남월로 가서 동네에서 가장 예쁜 여자나 귀부인들에게 꽃신을 신어달라고 하면서 돈까지 주었습니다. 그들이 신어보니까 신발을 신은 자신들의 모습이 참 예뻤습니다. 그래서 늘 신고 다녔지요. 그랬더니 그 여자들을 흠모하던 남자들이 신발을 사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남월 사람들 모두 신발을 사야만 했습니다.”

 

참 대단한 상인입니다. 이렇게 남들이 하는 생각과는 정반대로 사유해보는 것도 멋진 지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가 ‘맞다’라고 여기는 것을 뒤집어서 거꾸로 생각해보는 것, 나와 다른 주장을 펴는 사람의 관점에서 ‘저 사람은 왜 저런 주장을 펼칠까?’라는 생각으로 귀를 여는 관대함, 정답은 하나만이 아닐 수 있다는 너그러운 생각 등 이런 태도가 너와 나 사이에 굳게 닫힌 소통의 대문을 활짝 여는 전제조건이 아닐까 싶습니다.

 

 

Eco-Times 최원영 전문위원 wychoi1956@hanmail.net

              (인하대학교 프런티어 학부대학 겸임교수.행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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