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의 여름은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찬란하다. 긴 겨울이 언제 있었냐는 듯이 하늘은 높고 푸르며 흰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있어 보기에 좋다. 유월에 접어들면 시베리아 포플러의 흰 꽃가루가 날리면서 울란바타르 시민들을 괴롭힌다.
가로를 걷기에 성가실 정도로 꽃가루가 흰 눈처럼 날려서 앞을 가로막는다. 꽃 알러지가 있는 사람은 아예 입을 막고 걷는다. 흰 꽃가루는 길바닥에 눈처럼 쌓여 살포시 부는 바람에도 이리저리 보도 위를 흩날린다.
이즈음은 졸업시즌이다. 대학마다 졸업생들과 가족들의 성장한 모습에 눈길이 가고 꽃다발을 들고 오가는 사람들의 걸음걸이에서 희망과 보람이 넘쳐 흐른다. 오늘은 숙소 아파트 가까이 있는 예술대학 앞 거리가 부산하다.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졸업생들의 밝은 모습이 환하게 빛난다. 이들은 축하 화환으로 졸업하는 아들, 딸들을 축하하고 온 가족 친지가 총동원 되는 분위기이다. 시내 열 군데 정도의 꽃집은 이맘때가 대목이라고 한다.
꽃 선물을 하는 이나 받는 젊은 이의 표정이 무척 행복해 보인다. 그리고 희망에 차 있다. 꽃은 활짝 피어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운 본성을 나타낸다. 이날만은 진정한 마음을 담아 꽃을 전하고 있다. 꽃 가게의 꽃들은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되고 있다고 한다.
아침 산책을 나가는 도중에 만나는 국립박물관. 그 앞에 놓여 있던 옛 유물들. 말없이 서 있던 사슴돌(deer stone), 라마사원에 매달렸던 쇠종(iron bell)에 양각된 문양들이 외국 관광객들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리고 징기스칸의 기록을 새겨둔 석비의 글자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리송하다. 겨우내 사람 보기가 힘들었던 박물관 앞이 성시를 이루기 시작한다.
박물관 선전 포스터가 나의 눈길을 끈다. 박물관 앞을 오가며 무심히 지나쳤던 포스터이다. 포스터 사진은 바로 고구려 주몽, 동명성왕의 석상을 박물관의 대표유물로 선정한 것이다. 과연 이에 관심을 두는 이가 있을까.
나는 인터넷을 통해 동 몽골지역 보이르(Buir)호수 근처에 고구려 유적인 성터, 고분, 석상이 있다는 걸 알았다. 고구려 시조인 주몽, 즉 동명성왕의 석상이 호수 부근에 서 있다고 했다.
지금도 몽골인 가운데 '촐몬(Cholmon)'이란 이름을 가진 이들이 많이 있다. '촐몬'의 우리말 음차가 '주몽'이고 금성을 뜻하는 말이다. 유목민족이 북극성, 북두칠성과 함께 신성하게 여기던 별 자리이다.
동 몽골 이곳을 한번 가보아야 할 터인데, 하는 마음을 늘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한참 흐른 후 파악한 바로는, 바로 그 훈촐로(Huncholo, 석인상)가 국립박물관에 전시돼 있다지 않는가. 현장에 있던 것을 이곳에 옮겨 전시해 놓았다니, 왜 그랬을까, 굳이 현장에 있어야 할 유물을 왜 이곳으로 옮겨 왔을까.
그런데 나에게 의미있게 와 닿는 주몽 석인상이 포스터에 선보일 줄이야. 몽골 역사학계가 상당히 비중을 두는 유물인가 보다. 고구려와 몽골인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한 장의 사진이다.
이는 옛 한반도의 조상들이 북쪽 바이칼호수 주변에서 이곳 몽골고원을 지나 한반도로 갔다는 흔적 가운데 하나로 볼 수도 있다. 그런데 무엇을 보고 동명성왕 석상으로 고증, 판단을 했단 말인가.
10여 년 전에 이곳을 몽골학자들과 공동탐사한 연세대 손보기 교수의 발표논문에 의하면, 이곳 주민 가운데 '을지문덕'이란 이름을 가진 이가 있었다고 한다. 을지문덕 고구려 장군 이름이 멀고 먼 이곳까지, 오늘날까지도 전승돼 왔다는 말인가. 옛 땅 고구려 선조가 이곳까지 세력을 넓혀 살았다는 말인가.
몽골식 발음은 아마 한국어 발음과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았을 터인데, 어떻게 을지문덕의 이름이 지금까지도 이곳에 남아 있는 것인가?
나는 이러한 사실들을 규명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서울에 있는 프로덕션 후배에게 아이디어를 보내준 적이 있다. 후일 파악한 바로는 몽골어로 '올치 모돈(Olchi Modon)'이란 이름을 몽골인들이 사용한다고 한다. '올치'는 무슨 뜻인지 파악하지 못한 채 '모돈'이란 뜻은 지배자, 지도자, 왕을 뜻한다고 한다.
최근 주말을 이용해 방문한 징기스후레 리조트에서도 동명성왕의 모조 석인상을 만나, 무언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석인상은 큰 게르형태로 지어진 식당 입구에 턱 버티고 서 있었다. 작년 겨울 이곳을 찾았을 때에는 몰랐는데, 석인상의 형태가 눈에 익은 이후라 이제는 제대로 이를 알아볼 수 있었다. 관심이 있으면 보이는 법이다
봄철 날씨가 풀리고 더워지는 유월에 접어들면 수흐바타르 광장은 매일 행사의 연속이다. 울란바타르 시민 가족들이 다 모여드는 듯한 '어린이 날'을 비롯해 몽골 명소를 보여주고 소개하는 관광전, 북 페어(Book Fair), '군인의 날' 전시회, 건축 자재전 등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풍경 전문 사진작가가 촬영한 몽골풍경은 내가 여태껏 보아 왔던 것보다 뛰어나다. 태양이 작열하는 샛노란 사막과 벌겋게 달아오른 건조지형, 겨울철 꽁꽁 얼어붙은 호수, 찬 바람 속 흰 성에를 뒤집어 쓴 설원의 말들. 전부가 환상적인 몽골의 자연풍경이다. 광장 한 곳에서 사계절 몽골을 본다. 고비사막, 홉수골호수, 북쪽 산악지대가 다 모여 있다.
드문드문 보이는 외국인들보다 광장을 찿는 울란바타르 시민들이 작품들을 더 유심히 보고 있다. 넓은 영토이기도 하려니와 몽골 사람들도 일생동안 모든 지역을 다 돌아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들 스스로도 자신들이 사는 자연에 경이감을 갖고 보는 듯하다.
사진작가 볼로르 에르데네(Bolor Erdene)의 작품들이다. 그가 발품을 팔면서 몽골 전지역을 누볐을 자연을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호사여행을 하고 있다.
순간의 자연을 촬영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닐 터인데 한 컷의 사진이 주는 효과가 대단하다. 몽골인에게도 따지고 보면 자신의 발견이다. 내가 사는 곳이 이런 곳인가. 그들 스스로를 발견하고 있다.
5월 말 '군인의 날'이다. 광장 한 켠에 몽골 군대와 관련된 활동 관련 사진과 무기 등이 전시돼 있다. 시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보고 있다. 재래식무기에서부터 다연장 포까지 전시돼 있고 군대소속 체육인들의 국제대회 수상현황까지 상세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로 말하면 상무팀이다.
그리고 의료장비와 군복의 종류까지 전시해 놓고 있다. 군인가족의 꼬마가 내 카메라를 보자 군복을 입은 채 거수경례로 인사한다. 귀엽다. 대국민 몽골군의 홍보가 자연스럽게 이루어 지는 현장이다.
한 켠에는 최근 우리나라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소형무인비행기까지 전시돼 있다. 300만 인구 가운데 몽골 군인의 수가 15,000 명가량이라고 한다.
또 한켠에는 몽골 UN 평화유지군의 활동 사진들이 나의 관심을 끈다. 몽골은 1961년 UN에 가입했고 평화유지군활동으로 지금 남수단 등지에 5,000여 명의 군인들이 나가 있다.
몽골은 UN PKO(Peace Keeping Operation, 평화유지활동)에 기여하고 있는 모범국가이다. 몽골의 UN 분담금 액수는 얼마 되지 않을지라도 이들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세계평화유지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1991년 남북한이 UN 동시가입이 될 때 나는 뉴욕 UN 본부로 가서 UN 전모를 취재했다. 나는 이참에 국제기구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시켜볼 심산이었다.
그 때 제 7대 사무총장으로 코피 아난(Kofi Annan, 1938 - , 가나 출신)이 재임중이었고 그와 분담금관련 인터뷰를 했다. 백인 부하직원 한 사람이 취재팀과 인터뷰 하기 전에 그에게 자료를 보여주면서 무릎을 꿇고 인터뷰 질문내용을 브리핑하는 것을 보았다.
대단한 국제공무원사회의 관료주의 실상을 목격하는 순간이었다. 외교관으로, 국제공무원으로 출세하려면 UN 같은 기관에 근무해 봄 직하다고 느꼈다.
UN 도서관에서는 북한이 정부수립 후 외무상이었던 박헌영의 이름으로 UN 가입을 처음 신청한 문건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때 나는 PKO라는 활동이 세계평화유지에 꼭 필요한 활동임을 인식했다. 미국의 UN 분담금이 20%를 넘고 있었고, 우리나라는 한 자리 숫자임을 확인했다. 쉽게 말해 부자나라의 UN 회비가 많은 만큼 큰소리를 칠 수 있음은 당연한 현상이리라 확인했다.
몽골은 지금 국내에서 병사들 한 달 월급이 160 달러 수준인데, 평화유지군으로 근무하면 1,000 달러가 넘는 월급을 받는다. 국가재정에도 일정한 기여를 하고 있다.
외국파견활동은 대의명분도 있고 실속이 있는 평화유지군 활동이고 업적이다. 한 나라의 체면치레도 될 것이다.
나는 아프리카 분쟁지역 뉴스에서 흔히 보던, UN 글자가 새겨진 흰 장갑차가 마음에 들어 장갑차를 지키고 있는 젊은 몽골 PKO 군인에게 몇 마디 얘기를 건넨다. 그의 푸른 베레모가 멋있다. 평화를 상징하는 색깔처럼 느껴진다. 그는 친절하게도 나에게 호의를 베푼다. 찰칵. 영상기록 한 컷을 남긴다.
그런 다음 서구의 관광객 한 사내가 다가와 그에게 사진을 함께 찍자고 동의를 구한다. 그는 독일 군인이라고 한다. PKO 병사는 이처럼 어디에서나 인기가 있다.
그들은 아프리카에서, 아시아지역에서 비전투요원으로 더 이상의 내전이나 갈등이 확산되지 않도록 현재의 상태를 확고하게 지키고 있다. 지금 상태를 잘 유지하는 게 곧 평화이기도 하다. (찬란한 여름 2편으로 이어집니다)
Eco-Times 금웅명 고문producerkum@daum.net [MNB (몽골 국영방송국) 방송 자문관 역임]
<저작권자 ⓒ 생태환경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