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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웅명의 문화기행 /몽골단상(6-2)] - ‘찬란한 여름’2-

Eco-Times | 기사입력 2023/07/17 [08:20]

[금웅명의 문화기행 /몽골단상(6-2)] - ‘찬란한 여름’2-

Eco-Times | 입력 : 2023/07/17 [08:20]

 

 

 

광장 건너 길모서리에는 몽골미술협회의 갤러리가 있다. 내가 즐겨 찾는 전시공간이다. 이곳에는 수시로 몽골 미술인들의 작품경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기획전이 열려 이들의 예술적 감성을 엿보는데 아쉬움이 없다.

 

▲ 징기스칸의 정부인 '보르테(Burte)', 나랑체첵 작

 

소설에서 읽고 상상했던 가슴아픈 사연을 지닌 징기스칸의 부인 보르테(Burte)의 그림도 걸려 있다. 아름답게 그렸다.

 

몽골화가들은 자연을 비롯해 신화나 역사속의 인물상, 특히 여성상을 매우 고혹적인 인물로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변형(deform)으로 표현된 그림에서 화가는 사상이나 이념보다 사실성과 환상적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다.

 

해외여행을 하면 그 나라의 시장과 박물관을 꼭 가보라고 얘기하지 않는가. 나는 이 두 곳과 아울러 반드시 대표적인 갤러리 방문을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서민들의 생활과 시정, 그리고 그 나라 국민들의 감성이나 미의식을 엿보는 데는 미술관 방문이 추천할 만하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미술관, 구겐하임미술관, 그리고 파리의 오르세미술관이 관광객의 필수코스이다. LA의 게티미술관도 이곳을 방문하면 기분이 상쾌하다. 사막도시 LA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언덕에 위치해 캘리포니아의 따가운 태양을 만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몽골 도착 첫 해에 국립현대미술관을 찾았는데, 이곳은 안내지도에만 표시돼 있지 실제로 이곳을 찾을 수 없었다. 자연사박물관도 마찬가지이다. 흰 건물의 외양만 갖추고는 항상 문이 닫혀 있다.

 

한국이 새로운 자연사박물관 건립지원을 하기로 했다는데 어느 정도까지 진척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들의 전시물 소재는 훌륭한데 전시공간을 지닌 건물들이 사실 부실한 형편이다.

 

▲ 훈누 몰(Hunnu Mall)의 공룡화석

 

▲ 울란바타르 시내 중심가에 있는 초이진 라마(Choijin Lama) 사원박물관

 

▲ 사원박물관 경내의 아름다운 부조

 

고비에서 발굴된 공룡화석들이 공항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훈누 몰(Hunnu Mall)에 전시돼 있다. 정치박해희생자 박물관을 찾으면 최근 들어 문을 닫아 놓고 있다. 몽골 국민들의 지난 역사의 실상을 파악하는데 훌륭한 장소인데, 마냥 목조가옥 건물이 허물어져 가고 있다.

 

스탈린의 나라 러시아 눈치를 아직도 보고 있는 것인가. 가슴 아픈 몽골 현대사를 제대로 알려야 이들의 정체성에 눈을 뜰 것 아닌가. 슬픈 역사를 외면만 할 것인가.

 

어제는 사단법인 제주올레에서 주최하는 몽골 올레길 첫 걷기행사에 참가했다. '올레'는 제주도 방언으로 집과 큰길 사이로 나 있는 좁은 골목길이다. 제주도의 올레길 행사가 이곳에서도 벌어진다니, 은근히 관심이 있었다. 몽골 초원을 한껏 걸어보는 이 행사가 나에게 마지막 초원길인 듯하다.

 

 

아침 일찍 울란바타르에서 동쪽으로 25km 거리, 차로 20분 가량 떨어진 헝허르(Henhor) 마을에 도착하니, 아직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선진그랜드호텔에서부터 얻어 타고온 몽골여행사 마이크로버스에는 부산에서 온 올레팀이 타고 있다. 부산지역 길 연구, 탐방팀이다.

 

▲ 헝허르 마을 주민들

 

▲ 몽골 올레길 개장식 행사의 몽골 공연자들

 

제주 외에 인천에서 온 참가자들까지 걷기를 즐기는 300여 명이 모였다. 몽골인들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몽골인 약간 명이 참가했다고는 하나 한국 동호인끼리의 행사이다.

 

따지고 보면 몽골은 전 지역이 걷기만 하면 어디로 가나 마냥 초원길인데, 경제적 여유가 있는 한국사람들끼리 걷기행사를 하는 느낌이다. 그래도 제주의 유명한 올레프로그램 개장과 이에 따른 노하우의 전수라, 울란바타르시 관광청, 제주관광공사의 관계자들이 모였다. 대사와 한인상공인회장그리고 코이카 자문관 한 분이 내가 아는 사람들이다.

 

개장식장에 서구인 한 명이 있어 그에게 말을 걸었더니 그는 독일인으로 인천공항 물류시스템을 컨설팅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에게 서툰 독일어로 나를 소개한다. '이히 빈 코레아니셰 프로두젠트(Ich bin Koreanische Produzent.)'라 말하고도 이게 정확한 표현인지, 회의적이다.

 

오늘은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였으니 모두가 자연을 사랑하는 이들이다. 오전 10시 개장행사가 시작된다. 몽골의 젊은 남녀 두 명이 몽골 전통악기 마두금(Morin Khuur, 馬頭琴)의 연주와 노래, 무용을 선보인다. 몽골 초원에서 듣는 가락이 구성지다. 공연자의 전통복장과 연주가 신기해 참가자들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헝허르 마을 주민들도 무슨 일인가 싶어 먼발치에서 이 행사를 지켜보고 있다.

 

마을 한 쪽으로 오르는 복드항 산등성이길은 가파르지가 않다. 몽골 산길은 북부와 남고비 알타이(Altai) 산악지역을 제외하면 어디나 부드럽게 나 있다. 밋밋한 산의 경사는 구릉 정도로 보인다. 산을 오르는 참가자들에게 위압감을 주지 않는다.

 

모두들 한국과 다른 몽골 산야가 신기한지, 걷기를 시작하면서 사진찍기에 바쁘다. 최근 들어 스텝(Steppe)기후답게 유난히 비가 오지 않아 풀들이 말라 있다. 가끔 작디작은 꽃들이 땅을 기어가며 노랗게 점점이 피어 있다. 예년 이맘때는 푸르렀는데, 한국에서 온 참가자들은 푸른 초원을 구경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 어워(Ovoo)를 지나오는 참가자들

 

참가자들은 한참 산길을 오르고 내려가면서 한 곳 정상에서 돌을 쌓아 만든 어워(Ovoo)를 만난다. 일행은 이곳에서 기념촬영을 하느라 바쁘다. 처음 보는 몽골 서낭당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어워에서의 몽골 풍습을 알 리 없다. 시계 방향으로 세 번 돌고 기원을 해야 하는데... 2박 3일 여행일정은 이들에게 몽골의 진면목을 파악하기에는 시간이 짧다. 그러나 넓디넓은 몽골의 자연은 이들에게 경이롭게 다가서고 있다.

 

이들이 지금 걷고 있는 자연은 한국의 산과 비교하면 온통 구릉지대이다. 부드러운 흙과 푸석푸석하기까지 한 마른 풀들, 그리고 가끔 만나는 초원의 자그마한 돌멩이들, 이곳 저곳에서 연신 조용한 기계음을 내며 도약하는 새끼 메뚜기들. 갈색의 보호색이라 마른 풀들 사이로 바삐 움직여 쉬 눈에 띄지 않는다. 이 녀석들은 날아 올라야 제대로 보인다. 삐리릭 날개짓을 하는 아직 작은 녀석들이다. 푸른 풀들을 먹고 자라야 제모습을 갖출 것인데.

 

이곳에는 한국 산야와 다른 상식의 개념을 뛰어넘는 그 무엇이 있다. 목적지까지 10km가 넘는 거리라, 일행의 걷기행렬이 아마 2, 3Km에 걸쳐 열을 만들면서 움직이는 것 같다. 나는 쉬엄쉬엄 걷는 편이라, 꼴찌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하고 뒤를 돌아다 보면 저 멀리 까맣게 행렬이 줄을 이루며 따라오고 있다. 즐거운 '고난의 행군'이다.

 

1934, 1935년 368일간 행군한 모 택동의 대장정(Long March)이 이랬을까. 농촌이 도시를 포위한다는, 공산주의 혁명의 기반을 다진 모택동의 군대는 장개석 국민당 군대의 토벌을 피해 산악, 늪, 고원지대를 걷고 걸었다. 고난과 위험의 연속이었고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극한상황의 드라마를 보여주었다.

 

중국 대륙 12,500km를 남부 내륙에서 시작해 북부 연안까지 C 자 형태로 행군했다. 출발 당시 15만 명의 홍군 병사들이 연안에 도착할 때는 8,000 명으로 줄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모 택동은 대륙의 지배권을 확보했고 하루 평균 30km의 행군이 나중에는 하루 70km의 행군속도를 냈다고 한다.

 

지금 올레길의 이 행렬의 걷기는 10km 거리를 대 여섯 시간 걸으면 되니 호사이다. 단지 건강을 위하고 생활의 여유를 즐기는 것이다. 생존을 위한 투쟁의 길이 아니다. 요즘 유행하는 '슬로우(slow)' 운운하는 행복한 길인 셈이다. 오늘 도착해야 하는 걷기의 마지막 종착점이 있기에 올레 일행은 즐겁게 걷고 있다.

 

다만 이완되어 쳐져 있던 다리근육은 물론 전신 근육의 쓰임새가 많다는 것 뿐이다. 동행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심지어 혼자 걸을 경우 이 생각 저 생각을 하게 된다. 힘들고 지루한 동작에는 단순한 생각이 따른다. 장막속에 갇혀 있던 생각들이 기억과 의식의 저편에서 가물가물 솟아난다.

 

걷기의 참맛은 집중사고를 할 수 있어 좋다. 그러면서 심신이 이완되고 한편 긴장되는 반복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 산을 오르는 올레꾼들

 

▲ 일행의 걸음이 그윽한 산야를 배경으로 평화스럽게 보인다.

 

1980년대 초 나는 '월요기획'이란 젊은 세대의 갈등을 다룬 프로그램 취재를 위해 지리산 등반을 하면서 정상으로 향하는 고교생들을 촬영한 적이 있다. 그때는 정말 1박 2일로 발목 시림을 경험했다.

 

경남 함양 백무동 가파른 골짜기를 타고 정상에 오르는 코스라 직선거리 상으로는 가까운데, 경사는 아주 심한 편이었다. 젊은이들보다 산행길을 앞서 올라가 이들이 올라오는 모습을 촬영하느라, 내 딴에는 매우 신경을 쓰고 온 힘을 다해 빨리 걸어 올라갔다.

 

당일로 정상의 고사목단지에 도착해 야영하고, 이튿날 올랐던 코스를 또 다시 걸어 내려왔다. 산을 다 내려왔을 무렵 발목이 시큰거렸다. '발목이 시리도록 걷고 싶다'는 시구(詩句)의 그런 발목이 정말 시려왔다. 이런 상황을 두고 '발목이 시리다'라고 표현하는구나, 나는 그때 처음 이런 발목 상태를 경험했다.

 

그 때와 비교하면 지금 내가 걷는 조건은 편안하기 그지 없다. 푹신한 흙과 풀로 덮인 산길을, 그냥 땅만 보고 몇 구비의 산 구릉을 넘는다. 먼 곳을 보면 빨리 가고 싶은 욕구가 생기고, 앞선 사람들을 보면 힘이 빠지기 십상이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보면, 먼 데 일행이 저만치 까마득한 행렬을 이루며 벌써 앞서가고 있다. 거대한 자연 속에서는 앞선 일행을 볼 필요가 없다. 낙오되는 느낌도 싫다. 그저 땅만 보자, 땅만 보자. 마냥 걷는 게 행복한 길이다. 그 까닭은 내가 자연 속에 이처럼 건강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찬란한 여름의 길목에서 나는 여름과 겨울을 동시에 느낀다. 어제까지 여름처럼 느껴지던 날씨가 몽골 올레길 행사에 참가해 샌드 스톰(Sand Storm, 모래 폭풍)으로 여름비가 아니라 겨울을 느낄 정도의 찬비를 맞았다.

 

'이게 몽골의 날씨예요',라고 옆의 몽골 동행자가 나에게 설명한다. 현지인이 현지 사정을 잘 아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나는 여태껏 자연의 냉엄한 질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우리는 환경에 민감하면서도 도시생활 위주의 생활을 하다보니, 자연을 잊은 채 살고 있다.

 

찬란한 여름, 순경만 생각했지, 나는 역경이 있는 자연을 망각하고 있었다. 울란바타르 칭기스칸 광장의 여러 행사에만 익숙해 있었지, 자연 속 유목민의 험한 생활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 도착할 즈음, 툴즈를렉 마을 멀리서 몰려오는 샌드 스톰(Sand Storm)

 

▲ 샌드 스톰 속의 올레꾼들

 

봄철만 되면 한국에서는 황사현상이 시작돼 우리 일상을 괴롭힌다. 이를 막는 근본적 대책은 없는 것인가. 한, 몽골 그린벨트사업단에서 10년 넘게 사막화를 막기 위해 스텝과 사막 지대의 나무연구와 식목사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전국토의 40%나 되는 이 넓은 사막을 언제 나무들로 덮을 것인가. 산림선진국 한국의 경험이 이들에게 훌륭한 교과서가 될 터인데. 언제쯤 사막에 산림다운 산림이 나타날 것인가.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난 직후, 호남혁명군에 입대한 모 택동은 혁명을 위해서는 체력단련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는 '공산당 선언(Manifest der Kommunistischen Partei)'과 칼 카우츠키(Karl Kautsky, 1854 - 1938)의 '계급투쟁론'에 심취했다.

 

공산주의 혁명이념을 받아들인 그는 20년 후, 대장정을 통해 농촌지역인 성과 도시를 점령하거나 통과하면서 근거지인 해방구, 소비에트를 구축했다. 1년여 동안 홍군을 이끌며 11개 성, 54개 도시, 18개의 산맥을 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오늘 기껏 한나절 몽골의 산등성이를 걸어 헝허르 마을에서 툴즈를렉 마을까지 가벼운 산책을 한 셈이다. 나만의 생각을 가다듬기 위해 오늘 하루 그 동안 안 쓰던 전신 근육을 최대한 움직였다. 아마 며칠간 온몸이 나른하고 근육들이 땡길 것이다. 에너지의 소진 뒤에 일종의 카타르시스가 찾아오고 있다. 거친 날씨 속에서도 찬란한 계절은 오고 있었다.

 

 

Eco-Times 금웅명 고문producerkum@daum.net

[MNB (몽골 국영방송국) 방송 자문관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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