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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충순의 중국 문화기행 ] - 입추(立秋) -

-가을에 접어들면서 곡식이 여무는 시기
-말복으로 이어지는 절기로 더위 기승
-고대 중국에서는 입추를 매우 중시, 가을을 관장하는 신에게 제사

Eco-Times | 기사입력 2024/08/07 [07:45]

[박충순의 중국 문화기행 ] - 입추(立秋) -

-가을에 접어들면서 곡식이 여무는 시기
-말복으로 이어지는 절기로 더위 기승
-고대 중국에서는 입추를 매우 중시, 가을을 관장하는 신에게 제사

Eco-Times | 입력 : 2024/08/07 [07:45]

 

 



입추는 대서(大暑)와 처서(處暑) 사이에 있으며,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접어들기 시작할 때이다. 어쩌다 늦더위가 있기도 하지만, 칠월칠석을 전후하여 밤에는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김장용 무·배추를 심는 등 가을 준비를 시작한다.

 

김매기도 끝나 한가해지기 시작하니 ‘어정 7월, 건들 8월’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러므로 고려 시대에는 관리에게 휴가를 주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때는 곡식이 여무는 시기로 햇볕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이므로 조선 시대에는 입추가 지나서도 비가 닷새 이상 계속 내리면 조정이나 각 고을에서 비를 멎게 해달라는 기청제(祈晴祭)를 올리기도 하였다.

 

이 무렵 날씨를 보고 그해의 농사를 점치기도 하였는데, 입추에 하늘이 청명하면 백곡(百穀)이 풍년이고, 이날 비가 조금 내리면 길하며, 많이 내리면 흉년이 된다고 여겼다.

 

입추 다음에 곧 말복이 온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실제로는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시기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을 날씨로 접어드는 시기는 실제로 입추보다 추분 때가 된다.

 

고대에는 입추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음을 《예기·월령(禮記·月令)》에 ‘입추 날에 주(周)나라 천자는 친히 삼공(三公)·육경(六卿)·제후(諸侯)·대부(大夫) 등 신하를 이끌고 서쪽 교외에 나아가 오방신장(五方神將)의 하나로서, 가을을 관장하는 서쪽의 신인 백제(白帝)와 가을의 신인 욕수(蓐收)에 제사를 지냈다’라는 기록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추수 감사의 의미로 입추 날 토지의 신을 모신 사직(社稷)에 나아가 가을 제사를 지내는 추사(秋社)가 있다. 추사는 한(漢) 나라 때부터 시작되었고, 훗날 입추 뒤 다섯 번째 술일(戍日)로 고정되었다. 이날 햇곡식으로 빚은 떡과 술로 즐겼으며, 부녀자는 친정 나들이하기도 하였다.

 

일부 지역에서는 ‘사신(社神) 받들기’·‘사죽(社粥) 끓이기’ 등이 풍습도 있다. 북경에서는 입추가 되면 교추(咬秋)와 첩추표(貼秋膘)의 풍습이 있다. 가을을 씹어먹는다는 의미의 교추는 오이·수박·참외 등을 먹는 것이고, 가을 허릿살 살찌운다는 의미의 첩추표는 돼지고기를 삶아 먹는 것이다.

 

여름철에는 땀을 많이 흘리고, 식욕이 부진하여 체중이 줄게 되므로 많은 지역에서 ‘첩추표’를 하였다. 우리가 ‘여름을 탄다’라고 하는 말을 중국인들은 ‘고하(苦夏)’라고 한다. 그러므로 ‘가을에 몸보신 잘하면, 한겨울 질병이 없다’라는 말도 있다.

 

입추가 되면 특별히 ‘음기(陰氣)를 보양하고, 폐를 윤택하게 한다’라는 원칙에 따라 연밥·목이버섯·참마·참깨·꿀 등을 즐겨 먹는다. 길림에는 남녀노소 모두가 좋아하는 요리로 돼지갈비와 감자·콩·호박·당근·양파·옥수수 등을 함께 끓인 ‘일과출(一鍋出)’이라는 돼지갈비찜을 즐긴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풍습이 전해오고 있다.

 

1. 물[水] 달기

입추 전후에 크기가 같은 그릇에 물을 가득 담아 그 무게를 비교해 본다. 만약 입추 전의 물이 무거우면 복수(伏水; 복날의 물)가 무거운 것이고, 가을에 비가 적으며, 만약 입추 뒤의 물이 무거우면 가을날의 비가 많게 되어 가을장마가 올 수 있다고 보았다.  

 

2. 콩비지 먹기

산동·사천 등 지역에서는 콩비지와 채소로 만든 음식 먹었다.

 

3. 추망회(秋忙會)

곧 시작될 가을의 바쁜 농사철을 위해 농기계, 가축, 식량, 생활용품 등을 교환, 매매 등의 방식으로 준비하기 위한 임시 장을 벌린다.

 

4. 가을 복숭아 먹기

절강·항주 일대에서는 입추 날 가을 복숭아를 먹는다. 이날 각자 복숭아를 먹고, 그 씨를 몰래 감추었다가 제석(除夕) 날 밤에 아무도 모르게 불에 넣어 태우면, 새해 일 년 동안 전염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5. 복원(福圓) 먹기

대만에서는 이날 ‘용안(龍眼)’이라는 과일을 먹는다. 용안은 ‘복원’이라고도 하며, ‘입추에 복원을 먹으면, 자손 중에 장원(壯元)이 나온다’라는 말도 있다.

 

6. 팥 먹기  

당·송(唐·宋) 때부터 입추가 되면 반드시 우물물로 팥을 삼키는 풍습이 있다. 아침에 서쪽을 향해 서서 팥 7알 또는 14알을 우물물과 함께 삼킨다. 이렇게 하면 가을 내내 이질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7. 입추(立鳅: 미꾸라지 서기)

무석(無錫) 지방 사람들은 입추 날 바람이 크게 불고, 큰비가 오면 논의 미꾸라지가 물에서 곧게 서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입추(立秋)와 입추(立鰍)의 발음이 같으므로 입추(立鰍)라는 말이 생겨났다.

 

8. 계란 먹기

계란을 먹으면 성정이 평온해지며, 허한 기(氣)를 보하고, 마음을 평안하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환절기마다 먹는다. 

  

당나라 왕유(王維)는 <산거추명(山居秋暝)>에서

입추의 느낌을 눈으로 보는 듯 노래하였다.

 

空山新雨後,(공산신우후) 방금 비가 그친 조용한 산에,

天氣晩來秋。(천기만래추) 저녁이 되니 가을 기운이구나.

明月松間照,(명월송간조) 밝은 달은 소나무 사이로 비치고,

淸泉石上流。(청천석상류) 맑은 샘물 바위에 흐르네.

竹喧歸浣女,(죽훤귀완녀) 대나무 숲 시끄러운 건 빨래하던 여자들 돌아오고,

蓮動下漁舟。(연동하어주) 연잎 흔들리는 건 고깃배 지나가기 때문이겠지.

隨意春芳歇,(수의춘방헐) 조물주 뜻 따라 봄 향기는 다했으나,

王孫自可留。(왕손자가류) 그대여, 여기도 살만하지 않나요?

 

이 시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초가을 어느 비 온 날 저녁 무렵 산촌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인적 드문 산촌에 비가 그치니 더욱 가을 색이 완연한데, 수줍은 듯 달님은 소나무 사이로 살며시 고개를 내밀고, 바위로 맑은 개울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맑고도 그윽하며, 소박하고도 우아한 정경이다. 신선 같이 청풍명월(淸風明月)과 송죽(松竹)을 벗 삼을 수 있는 초가을의 정취를 자랑하며, 이곳에서 함께 살지 않겠느냐고 넌지시 유혹하고 있다.

 

 

생태환경뉴스 Eco-Times  / 홈페이지: eenews.kr

Eco- Times 박충순 전문위원 dksrhr2@naver.com 

            (중국문학 박사. 전 백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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