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금웅명의 문화기행 / 몽골단상(12-2)] - 번영의 흔적을 찾아서 -

Eco-Times | 기사입력 2023/10/27 [05:30]

[금웅명의 문화기행 / 몽골단상(12-2)] - 번영의 흔적을 찾아서 -

Eco-Times | 입력 : 2023/10/27 [05:30]

 

 

 

▲ 하르호린의 아침

 

▲ 호텔 창밖 아침 풍경

 

이튿날 아침 7시 40분, 훤하게 밝아 오는 호텔 2층 창밖의 하르호린(Kharkholin) 마을 풍경은 여느 몽골 마을의 풍경이다. 뿌연 바위산이 창밖으로 멀찌감치 앉아 있다. 붉은 지붕들이 얹혀 있는 소담한 집과 집, 집들 사이의 판자 울타리, 이 울타리는 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의 판자집을 떠올린다. 집들 사이로 게르도 한두 채 보인다. 멀리 마을 배경으로 버티고 있는 회갈색의 암석으로 이루어진 산이 무게감을 준다.

 

▲ 하르호린의 아침, 마을 풍경



하르호린(Kharkholin)이란 지명은 투르크어로 ‘검은 자갈밭’ 혹은 ‘검은 큰 성’ 이란 뜻으로 ‘카라코룸(Karakorum)’이 몽골어로 변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언어학적인 면에서도, 이 지역에 거주했던 옛 투르크(Turk, 돌궐)계 유목민이 오늘날 몽골인의 조상과 관련 있음을 짐작케 한다. 검은 자갈이 많았던 지형은 곧 오래전, 이곳이 화산활동으로 생겨난 곳이었다는 증거이다.

 

1980년에 건설된 중앙아시아의 카라코룸(Karakorum) 하이웨이는 신장 위구르 지역과 파키스탄을 연결하는 1,000km의 고지대 도로이다. 카라콜(Karakul) 호수는 키르키스스탄의 파미르 고원에 있는 호수이다.

 

그리고 중국인들이 성산으로 여긴다는 곤륜산(崑崙山)을 투르크 민족은 ‘코룸(Korum)’이라고 표기한 것 같다. 어쨌든 ‘카라(Kara)’가 ‘검다’는 뜻으로 쓰인다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어 민족들 간에 문화가 오고 갔음을 알 수가 있다. 아시아 대륙의 옛사람들은 자연의 형상을 보고 지명을 정했고 그렇게 불렀다. 몽골 고도 ‘하르호린(Kharkhorin)’은 ‘카라코룸’의 몽골어 음차 발음과 표기임을 짐작할 수 있다.

 

‘콜’은 몽골에서는 ‘골(Gol)‘이라고 하는데, 이는 우리말로 ’골’짜기, 개울, 강을 나타내는 말이다. 지명을 통해 아시아 대륙의 언어가 상통하는 것은 서로간 긴밀한 소통이 있었음을 증명한다. 게다가 투르크어, 몽골어, 우리말 모두가 알타이 어족(Altaic languages)임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 하르호린의 이른 아침, 한 사내가 오토바이를 타고 마을로 오고 있다.



1235년 칭기스칸의 셋째 아들 오고타이(우구데이) 칸이 금나라를 정복한 후, 이곳을 수도로 정했다고 한다. 아마 이전에는 이동을 중시하는 기마유목 민족이라, 초원길(Steppe Road) 상의 도읍 개념이 없었던 것은 아닌지. 그들에게는 싱싱한 풀이 자라는 곳의 가축 방목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이후 쿠빌라이 칸 때 지금의 북경 부근 대도(大都)로 수도를 옮겨 갔다.

 

나는 부지런히 고도의 이른 아침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다. 희뿌연 아침 마을 풍경이 의미를 지닌 채 다가온다. 그런데 마을 어디에서도 희미한 문양이 새겨진 큰 돌조각 하나 보이지 않는다. 옛 고도의 발자취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니. 화려했던 번영은 사라지고 왜 폐허가 되었을까.

 

▲ 하르호린(Harholin) 전경

 

8시 30분, 일행 셋은 하르호린의 전경을 보고자 대제국 지도 기념비 - 이곳 사람들은 이곳을 ‘양반 탑’이라고 부른다 - 가 있는 야트막한 산 정상으로 향한다. 제대로 길이 나 있지 않은 산기슭을 차로 힘겹게 올라가니 그곳에는 훈(Hun) 제국 시대, 투르크(Turk) 제국 시대, 몽골(Mongol)제국 시대를 아우르는 모자이크 타일의 지도가 붙어 있는 세 개의 벽면이 둥글게 서 있다.

 

▲ 푸른 부분이 몽골제국의 영역 표시, 타일로 벽면 그림을 만들어 두었다

 

▲ 대제국 지도 기념비

 

▲ 기념비 중앙에 납작한 돌로 쌓아 만든 어워(ovoo), 둘레는 하닥(hadag) 천을 걸어두었다

 

기원전 3세기에서 기원전 2세기까지의 훈(Hunn) 제국 시대, 6세기에서 8세기까지의 투르크(Turk, 돌궐) 제국 시대, 13세기에서 15세기까지의 몽골제국 시대의 지배 영역을 표시한 벽면이 서 있다.

 

▲ 13세기 몽골제국 때의 영토

 

▲ 칭기스칸 광장 스테이트 빌딩 앞의 칭기스칸 좌상

 

그 안 중앙에는 돌무더기의 어워(ovoo)와 푸른 깃발 하닥(hadag)이 꽂혀 있다. 이는 이 땅 일대가 상서로운 영토임을 나타내고자 함일 것이다. 이들이 지배했던 옛 시절의 영역 표시는 화려한 영광이, 그리고 그 속의 숱한 이야기가 서려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곳을 찾는 몽골인들이 기원하면서 자부심을 느끼기에 충분한 전통민속의 상징물이다.

 

몽골 중등 국사 교과서를 보자. 기원전 3세기 이후 6세기 중엽까지 몽골 고원에서 일어난 고대국가로 흉노(BC 209~AD 93), 선비(1~3세기), 유연(330~555년) 등을 소개하고 있다. 이어 6세기 중반 이후 몽골제국 건국 전인 12세기 초반까지 활약했던 국가로 투르크(돌궐, 552~745년), 위구르(745~840년), 키르키즈(840~923년), 거란(901~1125년) 등을 기술하고 있다.

 

이들은 어떤 때는 연합하고 어느 시기에는 분열해 흩어지는 역사를 지녔으나, 거슬러 올라가면 서로가 친연성을 지닌 채 피로 맺어졌을 것이다. 지금은 장구한 시간이 흘러 몽골과 주변의 여러 ‘스탄’ 나라로 살고 있다.

 

▲ 어워를 둘러보고 내려오는 델 복장의 몽골 여인

 

그리고 중앙의 어워(ovoo)는 이곳 방문객들이 선인들의 업적을 기리고 가정과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큰 돌들을 쌓아 만들어 둔 것이다. 시대마다 몇 개의 상징적인 부조가 붙어 있는 벽을 돌아본 후, 나는 먼발치의 마을을 내려다본다. 지금은 평범한 초원의 마을이지만 이곳은 앞서간 유목민족의 활약상이 담긴 축복받은 땅, 일정 기간 문화 중심지였다.

 

훤히 터진 평지의 넓은 시가지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옛 영광과 번영의 도시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그저 휑한 도시 전경이 방문객들을 맞고 있다. 옛 도시 카라코룸의 번영은 어땠을까?

 

드넓은 땅 초원에 300만의 인구가 살고 있는 몽골. 그 중 반수인 150만의 인구가 울란바타르에 살고 있다. 한때 현재의 수도를 울란바타르에서 이곳으로 옮기려는 정책적인 구상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21세기 언젠가는 몽골의 국력이 쌓이면 드넓은 이곳으로 수도 이전을 설계하는 것도 실현 가능한 구상일 것이다. 800여 년 전 이곳은 유라시아 문물이 모여든 초원의 길(Steppe Road)의 중요 거점이었고 징기스칸의 꿈이 서린 곳이기 때문이다.

 

 

# 몽골단상 12 – 3편은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Eco-Times 금웅명 고문producerkum@daum.net

[MNB (몽골 국영방송국) 방송 자문관 역임]

 

생태환경뉴스 Eco-Times  / 홈페이지: eenews.kr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