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금웅명의 문화기행 / 몽골단상(12 - 5) ] -재미난 에피소드와 쌍봉낙타 -

Eco-Times | 기사입력 2023/11/22 [09:20]

[금웅명의 문화기행 / 몽골단상(12 - 5) ] -재미난 에피소드와 쌍봉낙타 -

Eco-Times | 입력 : 2023/11/22 [09:20]

 

 

▲ 남근석

 

▲ 여근 계곡

 

▲ 사원 경내를 거니는 몽골 방문객

 

에르데네 조(Erdene Zo) 사원을 떠나 사원 남쪽 바로 건너편에 있는 낮은 산에 남근석(男根石)이 있다고 해서 들린다. 이곳 스님들이 여성의 중요한 부위처럼 생긴 산 모습, 즉 여근곡(女根谷)을 보고 정염에 불타 수도, 정진에 지장이 생기자 남근석을 마련해 놓았다고 한다.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에 더욱 호기심이 생겨 이곳을 찾았다. 산 중턱 길목엔 좌판에 기념품을 놓고 파는 한 남자 상인이 드물게 찾는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기념품이라야 조잡한 것들이다. 우리 곰방대 같은 것들도 보이고 중국제인 듯한 황동, 철제품들로 작고 가벼운 장신구 혹은 장식품이 수버니어를 대신하고 있다. 하르호린(Kharkhorin) 여행기념품들이다.

 

첼맥의 설명으로는 아이를 갖지 못한 여인이 이곳 남근석에 오르면 아이를 가질 수 있어 여인네들이 이곳을 찾기도 한다고 한다. 그녀는 이 돌로 만든 남근석을 보기가 민망한지 나와 동행하지 않고 저만치 혼자 어디로 가버린다. 나 혼자 볼 수밖에.

 

가까이 가보니 자연석이 아니라 가까운 시간 안에 사람의 손길이 스친 인공석이다. 적이 실망감을 감추고 사진 몇 컷을 찍어 둔다. 과연 16세기부터 있어 온 것인지, 아니면 그 이후에 이것을 만들어 가져다 놓았는지 모를 일이다. 석질 상태로 보아, 아마 이후의 것인 듯하다. 남근석 앞의 구릉진 산비탈의 모습은 흡사 여성의 중요 부위를 그대로 닮았다.

 

그런데 이런 자연 현상이야 흔히 있는 것 아닌가. 우리 주변의 경우도 먼 산의 모습이 여성을 닮았다, 바위의 생김새가 남성의 그것을 닮았다고 하는 예가 종종 있지 않는가.

 

오래전, 대구에서 경주로 내려가는 기차 칸에서 어떤 분이 차창 밖 오른 켠 먼 산을 가리키며 여근을 닮은 산이라고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과연 계곡의 생김새가 그러했다. 자연은 신비스럽고 예나 지금이나 숭배의 대상과 이야기의 소재가 되고 있다.

  

정오가 조금 지나, 이제 일행은 몽골제국의 옛 수도 하르호린(Kharkhorin)을 떠나 울란바타르로 향한다. 돌아가는 길은 도로의 상태가 매우 좋다. 최근 포장이 깔끔하게 된 도로이다. 이 포장도로는 터키 정부의 예산으로 포장해 놓았다고 한다. 미국 모하비 사막(Mojave Desert)의 캘리포니아 지방 도로를 달리는 착각마저 든다.

 

차로 30분가량 달리니 도로변 조용한 곳에 구쇼(Guusho) 박물관이 나온다. 현대식 단층건물이다. 우리가 이곳을 찾은 시간이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아무도 없다. 한참 있으니 바로 옆 언덕바지 게르에서 누군가가 온다. 일행의 기척을 보고 온 박물관 여직원이다. 입장료 5,000 투그릭을 받는다. 사진 촬영을 하려면 돈을 더 내야 한단다.

 

이곳은 6세기에서 8세기 동안의 투르크 제국의 돌궐족 지배자 빌게 칸(Bilge Khan) 시대의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주로 이 부근 유적지에서 출토된 석비, 초석, 석관들이 있고 은 세공품 같은 장식품도 눈에 띈다.

 

▲ 투르크 제국 시대의 석인상(Hun Cholo), 몽골 서북부 지역(촬영, 장정택 자문관)

 

석비의 경우 음각된 글씨는 나로서는 전혀 알아볼 수는 없으나 당시의 흔적을 나타내는 것이다. 음각 글씨가 그래도 남아 있다는 것이 고대 투르크 제국 시대를 이해하는데 단초가 될 것이다.

 

이 박물관 역시 터키 정부가 지어준 것이라고 한다. 13 세기 징기스칸 시대 이전, 이 광활한 땅은 돌궐족, 즉 투르크 유목민족이 살던 초원이었기 때문이다.

 

▲ 구쇼(Guusho) 박물관

 

박물관을 나서서 포장도로를 달리는데 쾌적한 포장길이 끊어지고 또다시 비포장 초원길이 나타난다. 아마 터키 정부가 박물관까지의 길만 포장을 해 준 것 같다. 오후 130분 으기(Ogii) 호수의 북쪽 길로 접어든다. 하르호린(Kharkhorin)으로 갈 때는 호수 남쪽 길이었는데 이번에는 그 위쪽 길을 택한 셈이다. 한참 동안 맨땅 초원길을 달려가니 산 정상에 어워가 나온다. 여기서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호수가 넉넉한 풍경을 연출한다.

 

▲ 재두루미 떼 인가, 물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몽골 헹티 지역(장 정택 자문관 촬영)

 

초원의 호수를 보니 신기하다. 어디선가 흘러드는 물이 꽤 큰 호수를 이루고 있다. 이곳에 철새가 날아들어 탐조 학자들이 가끔 이곳을 찾는다고 어디서 읽은 적이 있다. 몽골의 철새들은 가을이 되면 추수가 끝난 철원평야로 날아들기도 한다. 게 중에는 쇠기러기, 재두루미, 독수리 청둥오리 녀석들도 철원평야를 찾는다고 한다.

 

호수 근처 게르 여주인에게 길을 물어 일행이 탄 차는 방향을 잡는다. 울란바타르로 향하는 포장도로를 찾아가는 도중에 여우와 독수리를 만나기도 한다. 저만치 산 정상에서 어디론가 달려가는 여우가 보인다. 그리고 독수리의 비상이 예사롭지 않다. 하늘을 선회하고 있다. 먹잇감을 발견한 모양이다.

 

▲ 몽골의 가을 들판에서도 가축은 먹이활동을 계속한다. 300종의 목초가 이들의 먹이이다.5천만 두의 가축이 방목되는 몽골고원, 몽골의 다섯 가축은 양, 염소, 말, 소, 낙타이다.

 

 

▲ 어딜 가나 가축은 유목민족의 생존수단으로 생활의 동반자이고 노마드 재산목록 1호이다.

 

▲ 으기 호수 옆의 게르와 아낙, 그녀에게 울란바타르로 향하는 초원길을 물었다

 

초원길을 달리는 동안 전에 보았던 야생 쥐를 또 만난다. 아마 마모트 (Marmot) 종일 것이다. 자그마한 모양이 귀엽다. 파르르 잽싸게 달려 흙 구멍으로 쏙 들어가는 모습이 날쌔다. 아마 흙 속에 이들만의 식량창고와 연결통로가 구축돼 있을 것이다.

 

▲ 귀엽게 생긴 마모트, 녹색식물을 먹고 무리 지어 생활한다.

 

차는 초원길을 두 시간 남짓 달려서 포장도로를 탄다. 승차감이 부드러운 솜 같은 고마운 도로이다. 차의 요동이 없어 엉덩이에 우선 무리가 가지 않고 피로감을 훨씬 덜 느껴 한결 살 것 같다.

 

초원길의 주행은 말 타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는 솔직한 소감이다. 어째 그리 차가 아래위, 좌우로 흔들거리며 온종일 달리던지. 다시금 달리고 싶지 않은 초원길이다. 심지어 머리가 차 천장 위로 솟구쳐 올라가 부딪히기도 했다.

 

▲ 가을 들판의 쌍봉낙타 무리, 한가로이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한동안 차가 달리는데 이번에는 길옆에 낙타 무리가 보인다. 이 녀석들이 보고 싶어 차를 세우게 한다. 몽골에만 있다는 쌍봉낙타이다. 전에 울란바타르 근교 징기스칸 동상 공원(Genghis Khan Statue Park)으로 가다가 얼핏 낙타를 본 적이 있었다. 이는 관광객 상대로 장삿속으로 끌어다 둔 것이었다면 지금 내가 보는 낙타는 자연 속에 방목하는 낙타 무리이다.

 

서양인들이 옛 박트리아 지방, 오늘날 아프가니스탄 지역에서 본 낙타를 박트리안 카멜(Bactrian Camel)이라 불렀는데, 이 녀석들이 몽골에도 분포해 살고 있다. 등에 혹을 두 개 달고 있어 우리는 쌍봉낙타라 부르고 있다. 덩치가 아라비아 사막의 단봉낙타(Arabian Camel)보다 더 크고 털이 더 길어 차이가 난다. 등의 혹은 양분을 저장, 스스로 체내 공급을 한다. 사막을 가면서 며칠씩 물을 먹지 않아도 견디는 것은 지방질이 가득 찬 이것 덕분이라고 한다.

 

몽골 첫 지방 여행에서 나는 손님 대접으로 받은 한 사발 아이락(Airak, 마유주)을 마시고 취한 적이 있다. 일행이 받아 마신 것은 우리의 막걸리 비슷한 시큼한 낙타젖을 발효시켜 만든 아이락이었다. 낙타는 인간에게 모든 것을 제공하고 있다. 고마운 동물이다.

 

낙타의 젖이 잘 나오게 유목민이 마두금(Morin Khuur, 전통 현악기)을 연주하면 구슬픈 음률을 알아듣고 눈물을 흘리며 젖이 돌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는 낙타의 눈물스토리이다. 마두금 연주의 구슬픈 가락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어미가 버린 새끼에게 젖을 내주며 거두어들인다는 이야기는 인간에게도 교훈을 주는 내용인 것 같다. 몽골인들은 가축의 속성을 지금껏 꿰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동안 양이나 염소, 소나 말 떼는 많이 봤는데 몽골의 다섯 가축에 드는 이 동물은 나를 반가운 이방인으로 맞아 주고 있다. 멀찌감치 서서 낙타의 큰 눈망울을 본다. 긴 눈썹과 큰 눈망울은 몽골고원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깊은 연못과 같은 침묵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듯이 보인다.

 

▲ 고기, 젖, 털 등 모든 것을 인간에게 내어주는 쌍봉낙타

 

12일 답사 여정의 일행은 초원을 달리면서 옛 도시 하르호린(카라코람)의 번영을 상상해 보았다. 13 세기 고도 하르호린의 흔적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고, 300년 후 16세기 알타이 칸 때 건립한 라마 사원에서 몽골제국 시대의 편린을 찾아보았다. 옛 영화와 번영의 한 조각을 짐작해 보았다. 왜 유목민족은 흔적과 기록을 남기지 않았는가. 진실된 기록은 진정한 역사일진데. 그리고 일행은 울란바타르로 돌아온다.

 

▲ 옛 소그드(Sogd) 상인, 그들은 실크로드 상의 중국 내륙 여러 곳에 중개지를 두고 무역을 했다.

 

오늘날 우즈베키스탄 지역. 기원전부터 10세기까지 동서 실크로드의 중간거점에서 중개무역을 주름잡았던 소그드(Sogd) (이란계 스키타이 유목 민족)의 지도자가 일갈한 말이 떠오른다. “머무르는 자는 망하고 이동하는 자는 흥한다.“

 

그들은 천산북로, 천산남로, 타클라마칸(Takla Makan) 사막길을 낙타라는 이동수단을 이용해 멀고 먼 거리를 오가며 서역 문물과 당나라 장안(長安), 신라 서라벌의 비단과 인삼 등을 교역했을 것이다.

 

그들은 심지어 산동반도 등주(登州)에서 북서풍이 부는 계절풍을 따라 범선을 타고 서해안 당은포(唐恩浦)로 상륙해 동쪽 끝 서라벌로 입경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서라벌은 실크로드의 종착점이면서 동시에 출발점이기도 했다.

 

그러나 고유언어를 사용했던 소그드 족은 천 년 전에 역사의 물줄기에서 사라졌다. 현재 사마르칸트, 부하라가 예전에는 도시국가(City State) 형태로 번영을 누리던 그들의 근거지였다고 한다. 8세기 이슬람화됐던 그들은 13세기 흑사병의 창궐로 몰락의 길을 걷는다.

 

▲ 왼쪽부터, 경주 원성왕릉과 흥덕왕릉의 서역인 상과 월성 발견 토용옛 소그드인 무역상은 실크로드로 신라까지 와서 서역 문물을 전했던 것이 아닐까.

 

반면에 몽골 민족은 고유의 몽골 언어를 지키며 13세기 몽골제국 시대를 전후해 흥망성쇠를 겪으며 지금까지 이 땅에 살고 있다. 몽골제국은 일행 셋이 달리는 야성을 띤 정복의 길인 스텝로드(Steppe Road, 초원길)와 교역의 길인 실크로드, 비단길을 기마군단으로 연결시켜 놓았다.

 

▲ 피스 애비뉴(Peace Avenue)의 시민들,이 길은 울란바타르의 동서축을 이루며 중심 도로(Main Street)이다

 

▲ 징기스칸 광장을 가로지르며 주변을 살피는 라마승

 

낙타라는 동물도 그때도 지금처럼 들판이나 사막의 풀들을 취하면서 생태를 이어 왔으리라. 몽골고원의 자연조건은 끊임이 없다. 다만 유목민족의 사고와 행동은 변전했을 터이고 동물, 식물 등 대자연 속의 생명체는 생성과 소멸이 있을 뿐이다.

 

▲ 울란바타르 귀환 도중 도로를 가로지르는 말들

 

▲ 몽골 여행은 들판에서 시작해 들판으로 끝난다. 해넘이 풍경

 

이렇게 시간이 흘러간 오늘은 곧 과거의 연속이다. 과거를 찾아서 떠난 여행이 곧 계속되는 오늘을 제대로 보는 여정일 것이라는 의미를 되새겨 본다.

 

우리는 다시, 낙타가 들판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듯이 울란바타르로 향하고 있었다. 도중에 말들도 먹이활동을 하면서 들판 사이로 펼쳐진 포장도로 위를 걷고 있었다. 도로 위로는 시월 하순 오후의 북극 시베리아의 찬 바람이 또 다시 불기 시작했다. 이제 본격적인 몽골고원의 겨울 맹추위가 몰려오는 계절이다.

 

 

생태환경뉴스 Eco-Times  / 홈페이지: eenews.kr
 
Eco-Times 금웅명 고문producerkum@daum.net

[MNB (몽골 국영방송국) 방송 자문관 역임]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