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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충순의 중국문화 기행(29)] -입춘(立春)-

-새해의 첫 번째 절기
-24절기 중 봄이 시작되는 날

Eco-Times | 기사입력 2024/02/03 [08:54]

[박충순의 중국문화 기행(29)] -입춘(立春)-

-새해의 첫 번째 절기
-24절기 중 봄이 시작되는 날

Eco-Times | 입력 : 2024/02/03 [08:54]

 

 



입춘은 새해의 첫 번째 절기이기 때문에 농경의례와 관련된 행사가 많고, 새해에 집안의 평안과 發福(발복 : 복이 일어남)〮․ 財運(재운 : 재물의 운이 있음) 등을 기원하기 위해서 대문이나 기둥에

 

‘立春大吉, 建陽多慶。(입춘대길, 건양다경 : 입춘을 맞아 크게 길한 일이 생기고, 봄을 맞아 경사스러운 일이 많아라.)’라는

 

춘련(春聯)이나 마름모꼴로 세워 ‘용(龍)’자와 ‘호(虎)’자를 크게 써서 붙이기도 한다.

농가에서는 보리 뿌리를 뽑아 보고, 그해 농사가 잘될지를 점치기도 하였다.

 

 

한(漢)나라 이전부터 24절기 중 입춘을 춘절(春節)이라 하여 봄이 시작되는 날로 보았다. 이는 1913년 국민당 정부가 매년 음력 1월 1일을 춘절, 즉 설로 공식 발표할 때까지 2천 년 이상 지속되었다.

 

중국에서는 예부터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봄은 따뜻함·새들의 노래·꽃의 향기와 성장·밭갈이·파종’의 이미지가 자리 잡고 있다.

 

중국의 농촌에서는 ‘臘月立春春水早,正月立春春水遲。(납월입춘춘수조,정월입춘춘수지 : 섣달에 입춘이 들면 봄물이 이르고, 정월에 입춘이 들면 봄물이 늦다.)’라는 말도 있고, 윤달이 들어서 입춘이 한 해에 두 번 돌아오는 해를 쌍춘년(雙春年)이라 하며, 입춘이 없는 해는 봄이 없는 해라고 해서 ‘맹년(盲年: 맹인 해)’ 또는 ‘과부년(寡婦年: 과부 해)’이라고도 한다.

 

아주 드물게는 입춘이 정월 초하루에 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날을 ‘세조춘(歲朝春)’이라 부르며, 그해에는 농사가 풍년이라 하여 좋아하였다.

 

입춘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온다.

 

아주 먼 옛날 어느 해 입춘(立春) 무렵에 갑자기 사방에서 전염병이 돌았다. 이 전염병은 마치 술에 취한 것 같이 온몸에 힘이 빠져 손을 들 힘조차 없었다. 입춘 바로 전날 어떤 도사가 이 마을을 찾았다. 그는 마을이 개 짖는 소리·닭 우는 소리하나 들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 구경조차 할 수 없어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마을 외곽의 어떤 집 앞에서 주인을 큰 소리로 찾으며, 이리저리 살피던 그는 한 중년 남자를 보게 되었다. 그 집주인은 몸은커녕 눈꺼풀조차 움직이질 못할 정도로 피곤해하였다. 집주인은 기어들어 가는 음성으로 겨우 ‘온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와 같은 병에 걸렸다.’라고 말했다.

 

그가 몇 집을 둘러보니 모두 비슷한 상태였다. 그는 마을 동쪽 끝 고목나무 아래로 와서 남쪽을 향해 책상다리하고 앉아, 한쪽 손바닥을 치켜들며, 눈을 감고, 조용히 남해의 관음보살에게 역병 치료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기도했다.

 

여섯 시간쯤 지나자, 도사는 긴 한숨을 내쉬더니 급히 일어나 안뜰로 달려가서 곡괭이를 찾아 저장되어 있던 무 한 포대를 꺼내 마을로 달려갔다. 어느덧 날이 바뀌어 이미 입춘날 이른 아침이 되었다. 도사는 마을의 한 집에서 큰 수탉 한 마리를 찾아내어 꽁지 털 몇 개를 뽑아 땅에 꽂았다.

 

그리고 관음보살이 가르쳐준 대로 땅의 기가 통하길 기다렸다. 잠시 뒤 땅에 꽂았던 닭 깃털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도사는 ‘땅의 기가 통하였다’고 외치며, 마을 사람들에게 무 몇 입씩을 먹게 하였더니, 마을 사람들은 모두 역병이 나았다.

 

전염병이 물러가자, 다시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되었다. 그 이후로 마을 사람들은 입춘날에 평안을 기원하며, 무 몇 조각씩을 먹게 되었다. 이러한 풍습을 ‘교춘(咬春:봄을 물어뜯는다)’이라 하며, 오늘날까지 지키고 있다.

 

입춘에는 다음과 같은 풍속도 있다.

1) 영춘례(迎春禮:봄맞이)

봄이 오는 것을 환영하기 위해 입춘에 동쪽 교외에서 봄의 신인 청제(靑帝)에게 제사 지냈다. 『예기·월령(예기(禮記)·月令)』에는 ‘입춘날 황제가 친히 신하들을 이끌고 동쪽 교외에 나아가 봄을 맞이하였다.’고 하였다. 송나라 때 오자목(吳自牧)은 『몽양록(夢粱錄)』에서 ‘입춘날 모든 신하는 궁궐에 와서 축하했다.’고 하였다. 이러한 활동은 설날의 세배로 정착되었다.

 

2) 편춘(鞭春)

한나라 때 관청에서는 입춘 하루 전에, 관청의 정문 앞에 동서쪽 양방향으로 진흙으로 빚은 밭갈이하는 농부와 밭갈이하는 소의 상을 세워 놓아 봄이 옴을 알리었다. 당송(唐宋) 이후로는 녹색 옷을 입은 구망신(勾芒神 : 사람 얼굴에 새 몸을 하고, 두 마리의 용을 타고 다니는 봄의 신)으로 분장한 농부가 버드나무 가지로 토우(土牛 : 흙으로 빚은 소)에 채찍질하는 ‘편타춘우(鞭打春牛 : 봄 소 채찍질하기)’로 발전하였다. 이것은 봄철 농사를 준비하라는 표시이며, 이때 흩어진 흙을 논밭에 뿌리면 풍년이 든다고 믿어 다투어 가져갔다.

 

3) 춘반(春盤)

입춘날 천자가 대신들에게, 또 친구들과 이웃 간에 봄 채소를 위주로 한 봄맞이 음식을 나눠 먹는 풍습으로, 국수·양고기·지단·생강·봄 쑥·무·부추 등을 밀떡에 싸 쟁반에 담아 먹어서 춘반이라 하였다.

 

송나라 시인 왕자(王鎡)는 「입춘(立春)」에서

 

泥牛鞭散六街塵, (이우편산육가진 : 춘편에 장안 곳곳 진흙 덩이 날리니,)

生菜挑來葉葉春。(생채도래협협춘 : 춘반 생채의 잎잎마다 묻어오는 봄.)

從此雪消風自軟, (종차설소풍자연 : 이제 눈 녹고 바람 절로 부드러우니,)

梅花合讓柳條新。(매화합양류조신 : 매화는 시들고 버들가지 돋는 새싹.)

 

라며, 입춘이 되니 완연한 봄이 찾아왔음을 노래하고 있다. 시인은 봄이 춘편에 날리는 흙덩이와 춘반에 담긴 생채에 묻어온다며, 벌써 매화는 시들고, 버드나무 가지에는 새싹이 돋는다고 희망 섞인 허풍을 떨고 있다.

 

(* 올해는 2월4일이 입춘이다)

 

생태환경뉴스 Eco-Times  / 홈페이지: eenews.kr

Eco- Times 박충순 전문위원 dksrhr2@naver.com 

            (중국문학 박사. 전 백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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