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또 다른 인도를 보러 출발 ~~~
암리차르로 가기 위해 도착한 뉴델리 기차역 대합실인데 캐리어 끌고 지나가기가 미안할 정도로 깊은 잠을 자는 분들이 많구먼.
‘인도를 가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다녀온 사람은 없다.’
나를 두고 하는 말 같다. 20년만에 다시 찾은 인도의 수도 델리는 간디 국제공항이 신축되어 깔끔하고 비자 및 입국 심사가 빠르게 진행되는 것 외에는 시간의 길이에 비해 변한 것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무뎌 보인다.
8월의 인도 여행은 엄청난 무더위로 피하는 것이 상책이지만 나는 6월부터 9월까지 4개월만 열린다는 라다크 지방으로의 찻길을 달려 보려는 욕심에 눈과 귀를 닫고 왔으나 이를 후회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암리차르까지 기차로 이동하려고 5시경에 기상하여 뉴델리역으로 향했다. 한국어 가능한 인도 가이드 잔난은 한국어가 어눌하지만 보디가드로서 활용 가치는 충분할 것 같다. 기차역에는 노숙자인지 아니면 기차 환승을 위한 승객인지 구분이 안되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 편한 자리에 누워서 자고 있다. 온 가족이 떼거지로 자기 집처럼 자리를 차지한 무리들도 많아 보인다.
산이 보이지 않는 너른 평원에 누렇게 익어가는 논과 옥수수 밭을 반복적으로 보는 6시간 동안의 기차 여행은 지루하다. 3시간 반이라는 애매한 시차로 밤잠을 설쳐 부족한 잠을 채우고 잠시 후 도착하는 암리차르에 대한 공부를 하기에도 차고 넘치는 시간이다. 지루한 풍경만큼 역근처에 버려진 온갖 쓰레기 더미를 볼 수 있는데 스쳐가는 역마다 한결같다.
기차가 얼마나 긴지 몇 량인지 셀 수 없어 가이드에게 물었더니 대충 30량 정도는 되지 않을까 하는 모호한 대답을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베트남처럼 협궤열차가 아니라 우리나라와 같은 표준궤 레일이라 제법 속도를 내는 편이다. 기차는 생각했던 것 보다 깨끗하고 의자도 편하고 윈드 자켓을 입을 정도 에어컨도 빵빵한데 무엇보다 옵션으로 선택한 도시락과 간식이 일품이다.
암리차르(Amritsar)는 파키스탄과 국경을 인접한 펀잡주의 주도로 한 때 분쟁지역으로 분류되어 외국인이 접근하기 힘들었으나 지금은 두나라 국경인 ‘와가(Wagah)’에서 파키스탄과의 유별난 국기 하강식을 관광상품으로 만들어 유명세를 타고 있다. 자국민들에게는 국뽕 교육을, 외국인에게는 두 나라의 국력을 과시하며 관광수입까지 챙긴다.
황금사원 (= 하리 만디르)
지붕만 순금으로 만들어졌고 나머지는 도금이라고 하네. 그래도 750kg 황금이 사용되었으니 돈 좀 되겠지?
시크교의 최고 성지인 암리차르에는 750킬로그램의 금으로 만들어져 황금사원(Golden Temple)으로 불리는 하리 만디르(Hari Manir)가 있다. 기차역 근처 호텔로 오는 짧은 이동거리에도 머리에 터번을 쓰고 수염을 기른 덩치가 산만한 멋쟁이들을 보니 아주 오래 전 뮤지컬 영화 ‘애니’에서 못된 백만장자 워벅스의 충실한 하인이며 애니의 지킴이였던 시크교도 Mr. Punjab과 오버랩이 된다. 내가 전에 보았던 인도가 아닌 다른 얼굴의 인도에 발을 들였다는 것이 느껴진다.
구루 나낙이 창시한 시크교는 ‘힌두교의 프로테스탄트’라고 불리는 종교로 다신교인 힌두교와 달리 유일신을 모셨으며 카스트 제도를 부정하여 신 앞에서는 누구나가 평등하다는 것을 기본 교리로 하였다.
그리고 시크교도라면 반드시 지켜야 하는 ‘5K’라고 불리는 다섯가지 규칙이 있다.
1. 케스(Kesh)는 머리카락과 수염을 자르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는 것
2. 캉가(Kangga)라는 작은 빗으로 머리카락을 정돈하여 청결을 유지하는 것
3. 카라(Kara)라는 철 팔찌를 손목에 착용함으로써 신을 공경하고 올바르게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
4. 카차(Kachera)라는 특별한 흰색 속옷을 입음으로 절제와 순결을 지키는 것
5. 키르판(Kirpan)으로 의식용 단검을 착용함으로 시크교를 수호하고 억압받는 사람을 보호하는 책임을 갖는다고 한다. 특별하게 시크교도는 단검인 키르판을 허리춤에 차고 국내선 탑승이 가능하도록 법으로 인정하고 있다.
황금사원 경내로 들어 갈 땐 신발을 벗고 맨발로, 머리카락은 두건으로 모두 가리고 손과 발을 꼭 씻어야 한다. 물론 신발을 보관하는 곳이 있어 분실 위험은 없다. 계단으로 올라 사원 입구에 서니 황금 모자를 쓴 하리 만디르 (Hari Mandir)가 인공호수 암릿 사로바(Amrit Sarova)의 중앙에 자리잡고 있다.
릿 사로바 인공호수에서의 세욕
황금호수 중앙에 위치한 인공호수로 시크교도의 중요 의식 중에 하나인 세욕 장소로 이용된다. 지정된 장소에서만 세욕이 허용되고 종종 알몸으로 세욕을 하지만 터번은 절대 벗으면 안된다.
황금사원 순례길
호수 중앙에 있는 황금사원으로 가려면 연결된 다리에서 한참을 기다려야 볼 수 있다. 기다림은 2시간, 사히브름을 보며 기도를 드리는 시간은 1분 남짓. 이래도 되는 겁니까?
노인과 릭샤
황금사원 앞에서 만난 릭샤 할배의 간절함에 부응하지 못하고 렌트 차에 오르려니 미안하다. 그런데 나보다 서너살 아래라니 할배라는 단어는 취소여.
시크교의 경전 그랜드 사히브(Grand Sahib)가 있는 황금사원을 가려면 호수 가운데로 연결된 다리를 통하는데 언제 입장할 지 시간을 가늠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줄이 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천정의 선풍기 바람과 대리석 바닥의 차가움이 발로 전해져서 더위를 조금이나마 식힐 수 있다. 그래도 땀은 옷을 적시며 보이지 않은 곳에서 줄줄 흐른다.
황금사원에는 시크교 최고의 경전으로 불리는 그랜드 사히브가 금빛 보자기로 덮여 있고 그 뒤로 여러 악사에 의해 연주되는 가락에 맞추어 경전을 읽는 사르다르(시크교 사제)의 모습이 보이는데 사진 촬영은 금지이다.
이것을 잠깐 보자고 엄청난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순례하는 것을 보면 종교의 힘은 역시 대단하고 무섭다. 순례객들이 줄을 서 기다리는 동안에도 자원 봉사자들은 바닥에 물을 붓고 땀을 흘리며 걸레질하는 모습이 안스럽다.
황금사원 문지방을 넘기 전 엎드려서 그곳에 입을 맞추는 광신자(?)들 때문에 입장이 더디다. 그리고 본당 주변에는 경전 낭송을 따라하며 기도하는 많은 순례객들로 걷기가 힘들다. 경건한 장소에서 기도하시는 분들께 짜증도 내지 못하고 인내하며 한걸음씩 되짚어 나가는데 입장하려는 줄은 여전히 길다.
무료식당 구루 카 랑가르
‘신께 감사한다.’ 라는 간단한 기도와 함께 식사를 한다. 짜파티, 난 , 밥, 달, 커리 등으로 구성되며 무한 리필이고 식후에 식수까지 제공한다. ‘숟가락만 있었어도 함 먹어 보는건데. . . ‘
창시자인 구루 나낙은 평생 탁발하며 순례한 것에 대한 보답으로 종교나 인종에 관계없이 원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무료 숙식을 제공하고 있다. 게스트 하우스인 ‘그루 드와라 (Gurudwara)’에서는 잠자리 제공을, 그리고 ‘구루 카 랑가르 (Guru Ka Langar)’란 이름으로 운영되는 식당에서는 매일 7만 5천명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있고 모든 식자재는 기부로 충당되고 조리, 배식, 설거지, 청소 등은 자원 봉사자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간식 코너
사원 여러 곳에 설치된 간식 코너에서 주는 음식은 여러가지이다. 두 손을 얌전하게 내밀어야 얻어먹을 수 있다.
식당 외 경내 여러 곳에서 각종 간식을 제공하는 코너와 성수를 나누어 시음하는 코너도 있지만 미래의 천당 보다는 지금의 장염이 걱정되어 페트병 생수로 목을 축인다. 간식 체험을 하려 한 손을 내미니 두 손을 내밀라고 한다. 공손하게 받으라는 거다. 치사해서 그냥 지나치려다 그 옆에 창을 들고 서있는 시크교 병사에게 해코지를 당할까 봐 두손으로 받았다. 맛이 생소하여 버리려고 하는데 가이드가 안된다며 자기가 대신 먹는다.
잘리안왈라 공원 가는 골목길
잠시 후 벌어질 유혈사태를 짐작조차 하지 못한 채 시위에 참석하기 위해 가는 시민들의 표정이 밝다.
영국 다이어 장군의 무차별 사격 지시로 약 2천여명의 사상자가 났는데 실제 사격을 가한 군인 모두가 네팔계 용병이었다니 . . . 식민통치를 받는 공통의 아픔을 가진 두 민족의 비극적인 사건이다.
샤히디 우물 (Shaheedi Well)
무차별 총격을 피해 시민들이 뛰어든 비극적인 현장인 우물로 120여명의 시민들이 압사를 당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유리를 설치해 보존하고 있으며 그 당시의 총탄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다.
꺼지지 않는 불꽃 (Eternal Flame)
희생된 조상들을 기리려 공원에 마련된 ‘영원의 불꽃’이다.
황금사원 근처 인도인의 아픈 역사를 가진 잘리안왈라 공원(Jallianwala Bagh)이 있다. 들어가는 입구 찾기가 쉽지 않은데 겨우 찾은 입구는 좁은 골목으로 양쪽 벽에는 평온한 얼굴로 어디론가 향하는 사람들의 부조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영국이 갑작스레 시행한 ‘집회 금지법’에 반대하던 비무장 시위대에게 무차별 사격을 가해 2천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총탄을 피해 공동 우물로 뛰어든 120여명의 시민들은 압사로 희생되었다. 이 비극이 1919년 4월 13일이니 이보다 한달 정도 앞서 발생한 우리 조상들의 3·1 독립운동이 이들에게 모멘텀을 제공하지 않았나 싶다. 아니 그랬을 것이다.
파키스탄과의 국경마을인 ‘와가 (Wagah)’는 황금사원으로부터 30km 거리에 있는데 국경 지역이라 신속한 군 투입, 군수품 보급을 위해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속도를 내며 시원스럽게 달린다. 멀리서도 보이는 엄청 커다란 인도 국기가 금세 국경임을 알 수 있다.
와가 보더(Waga Boarder)의 국기 하강식
굳게 닫혔던 철문의 개방으로 국기 하강식이 시작된다. 조금은 코믹한 여러 식전 행사가 댄스 배틀하듯이 펼쳐지는데 하강식은 엄숙한 분위기로 진행된다
국기 하강식 관람석
‘인도의 첫번째 방어선’이란 구호 위로 간디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이번 여행에서 여러 명의 한국어 가이드를 통해 간디가 책을 통해 알고 있었던 것과는 달리 인도인들에 반하는 여러 정책들을 시행하여 절대적인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외국인이라 VIP lane으로 통과하는데 남녀 구분해서 검색을 한다. 경비병이 카메라로 자기 사진을 찍고 보여달란다. 혹시 카메라 총으로 의심하는 건가?
‘이 군인 아재가 007 영화를 넘 많이 봤구먼.’
반을 자른 스타디움 같은 관람석을 가득 메운 인도인과 나와 같은 아주 극소수의 관광객을 상대로 응원단장 역할의 인도 군인이 과도한 액션과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파키스탄을 조롱하는 말로 박수 갈채를 유도하고 있다. 여성 의장대, 군견 묘기 등 하강식 전에 여러가지 행사를 하는데 우리 고교 시절 교련 받을 때의 수준도 안되는 엉성한 퍼포먼스뿐이다.
식전 행사
남녀 의장대, 군견 부대 등 여러 식전 행사가 펼쳐지는데 엉성하기가 . . .
화려하게 차려 입은 인도 병사들이 파키스탄 국경 근처까지 행진하여 과도한 몸짓과 함성을 지르고 있다.
잠시 후 더위에 지쳐 쓰러질 것 같은 군견들이 등장해서 그 중 한 마리가 꽃바구니를 입에 물고 단상의 장교에게 전달하니 이게 뭐라고 박수 치며 좋아 죽는다. 우리 동네 댕댕이가 보면 ‘저 인간들 저게 그리 대단한겨?’하며 고개를 갸우뚱할 것 같다. 아무튼 인도군이 벌인 모든 퍼포먼스의 엉성함에도 환호로 답하는 인도인들의 열정이 대단해 보인다.
파키스탄 병사들도 국경너머에서 인도군과 비슷하게 상대를 비하하는 외침이 들리는데 인도 쪽수가 훨씬 많아서 인지 그들의 외침은 미미하다. 댄스 배틀하듯이 우스꽝스러운 걸음으로 양국 병사들이 국경선까지 다가가 서로 으르렁대는 모습 특히 얼굴 표정이 개콘 개그맨도 한수 배워야 할 정도이다.
인도 의장대 대장 겸 응원단장(?)
파키스탄 병사를 향하여 전투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는
그의 얼굴을 보니 자꾸 헛웃음이 난다. 이거이 엄청난 결례이겠지...
닭싸움 전문 병사들 (1)
개방된 국경을 사이에 두고 두 나라 병사들이 서로에게 괴성을 지르며 ‘우씨! 때려 줄까 보다.’
하는 손짓을 하고 있다. 알아듣지는 못하겠지만 설마 욕하는 것은 아니겠지
닭싸움 전문 병사들 (2)
‘누가 더 높게 발을 곧게 높이 올리나?’ 군인들이 총싸움이 안되니 발길질로 승부를 가르려 한다. 그런데 두 나라 병사 모두 태권도를 배우지 않은 듯 형편없다. 나도 인도 국뽕에 맛이 간 모양이다.
서로 왔다 갔다 자리를 바꾸면서 국기 하강을 시도하는데 자국 국기를 최대한 늦게 내리려는 눈치 싸움도 치열하다. 얼마 전까지는 파키스탄 병사들의 움직임도 볼 수가 있었다는데 지금은 높은 담으로 막아 국기 하강할 때만 그들의 모습을 잠깐 볼 수 있는 것이 아쉽다.
더위에 지친 집사람은 차에서 잠시 쉬라 하고 황금사원 야경 감상은 나만 하기로 하였다. 낮과 똑같이 머리에 두건을 쓰고 신발을 맡기고 손과 발을 씻고 입장하는데 낮보다 많은 순례객들로 붐빈다. 오후 10시까지 개방을 하는데 더위를 피해 많은 순례객들이 호수 주변에 앉아 황금사원을 마주하며 절을 마친 뒤 기도를 한다.
조명에 반짝이는 사원도 멋있지만 인공호수에 비친 사원의 야경은 정말 황홀하다. ‘No Photo’ 구역에서 어둠을 이용하여 사진을 정신없이 찍는데 창을 든 시크교 아재가 "노 포토"라며 점잖게 한마디 한다. 하지만 윽박지르거나 강제로 제재를 하지는 않는다. 그 옛날 모로코 경찰은 왕궁벽 사진을 찍었다며 카메라 빼앗아 사진을 검색하여 지웠던 개떡같은 기억이 새롭다.
배도 고프고 덥고 지치니 갑자기 당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서둘러 도착한 호텔 식당에서 난과 커리를 안주 삼아 맥주로 하루를 마감한다. 얼음처럼 차가운 맥주이지만 덥고 힘들고 지친 것을 모두 해소시키지는 못한 것 같다. 오늘이 여행 첫날인데 앞으로 20여일이 걱정된다. 그래도 잘 될껴. Don’t worry!
생태환경뉴스 Eco-Times / 홈페이지: eenews.kr
Eco-Times 한용성 여행작가 / 글.촬영
[前 금호타이어 사장. 現 케이프투자증권(주) 고문]
[한용성의 세계여행] -'인도 편 제 2부'- 10월7일에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