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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성의 세계기행(16)]- 헤밍웨이의 발자취를 따라서-

Eco-Times | 기사입력 2023/12/23 [00:10]

[한용성의 세계기행(16)]- 헤밍웨이의 발자취를 따라서-

Eco-Times | 입력 : 2023/12/23 [00:10]

 

 

                                          

                          니가 다이끼리 맛을 알어?

               

“My Mojito in La Bodeguita, my daiquiri in El Floridita”

이 쉬운 영어도 해석이 안돼?

이 시대의 진정한 마초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 아재가 ‘나는 모히또는 보데기따 바에서 마셨고 다이끼리는 저기 플로리디따 바에서 마셨다.’라고 한 말인데 두 곳 모두 헤 아재의 스토리텔링 마케팅으로 온종일 발 디딜 틈도 없이 전 세계에서 밀려드는 관광객들로부터 달러를 줍줍하고 있는데 혹시 헤 아재가 여기에 투자해 놓은 것은 아니겠지?

 

헤밍웨이가 아바나 동쪽에 위치한 자그마한 어촌 꼬히마르(cojimar)에서 만난 어부 그레고리오 푸엔떼스(Gregorio Puentes)에게 소주(?) 한잔 값으로 귀동냥해서 얻어들은 실제 이야기를 <노인과 바다 The Old man and The Sea>라는 제목의 중편소설을 써서 53년 퓰리처상에 이어 54년 노벨문학상까지 받았다. 

 

그는 쿠바 독립운동에 삶을 바친 혁명가 체 게바라(Ernesto Che Guevara)처럼 쿠바인을 진정 이해하고 사랑하였던 외국인이었고 쿠바인들 역시 그를 자기들의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쿠바 어디를 가도 만날 수 있는 체 게바라.

 

까사 CASA (정부에서 허가 받은 민박집)에서 우연히 만난 독일 청년들과 이야기하던 중에 힌트를 얻어 1940년경부터 미국으로 추방되던 1959년까지 머물렀던 이곳에서 헤 아재가 껄떡대며 한잔 기울였던 바(bar), 집필하며 묵었다는 호텔 그리고 <노인과 바다>의 실제 배경이 되었다는 어촌마을에서 헤 아재의 발자취를 더듬으러 발품을 팔아 보기로 하였다.

 

지금은 미국과 국교가 일부 정상화되어 미국, 쿠바간 직항노선이 생겼으나 내가 방문할 당시는 미국을 제외한 타국 항공기를 이용해서 멕시코나 캐나다를 통해서만 쿠바로 우회 입국할 수 있었고 비자는 항공사 체크인 카운터에서 방문 비자용 티켓을 구입하면 되었다. 이 비자로 쿠바의 출입국이 승인되며 여권에는 쿠바 출입국 도장을 찍지 않아 서류 상으로 쿠바를 다녀간 흔적이 나타나지 않게끔 완벽한 여권 세탁을 해준다.

 

나는 아바나대학 근처의 까사를 나와 카리브해에서 불어오는 상큼한 바람과 남성미가 넘치는 거친 파도를 즐기며 말레꼰 해안 방파제를 벗삼아 걷다 보니 어느새 모로성과 바다를 가운데 두고 마주한 말레꼰 공원에 도착한다. 

 

 

            

        말레꼰의 야경

낮의 허름함과는 달리 밤의 스카이라인은 화려하고 아름답다. 늦은 밤 말레꼰 해안에는 두 부류의 낚시꾼이 있는데 한 부류는 레알 물고기를다른 한 부류는 19금을 실천해 보려는 젊은 인간 낚시꾼이. . .

 

평일 이른 아침임에도 방파제를 방석으로 깔고 수다를 떠는 중년 아재들, 학교를 땡땡이 친듯한 학생들 그리고 물고기 잡기에는 관심 없는듯 여러 대의 낚시대를 걸어 놓고 카리브해멍을 때리고 있는 노년 군상들이 곳곳에 진을 치고 있다.  

‘이곳 실업률이 만만찮다고는 하던데. . . 암튼 여유가 있는 듯하여 좋아는 보이네.’

 

엊저녁 쿠바 수도 아바나에 도착하여 첫나들이인지라 우선 아바나 구도심의 중심인 까삐똘리오(capitolio)를 찾았다. 까삐똘리오는 미국의 국회의사당과 쌍둥이 건축물로 쿠바와 미국의 사이 좋았을 때 미국의 원조로 지어졌는데 형님보다 살짝 키도 키우고 살도 찌게 만들어 자기들 것이 더 웅장하다는 자부심을 갖자고 하였다는데 글쎄 덩치만 크다고 쌈 잘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플로리디따 바

헤밍웨이가 즐겨 마시던 칵테일 다이끼리 (Daiquiri)로 유명한 곳으로 간판에 ‘내 다이끼리는 라 플로리디따에 있다’라고 쓰여 있고 친필로 쓴 글은 헤밍웨이 사인과 함께 액자로 벽에 걸려 있다. 

  

까삐똘리오 가까이 위치한 오비스뽀 거리는 서울의 명동거리와 같이 화려하고 늘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활기 차다. 이 거리 초입에 위치한 플로리디따 바(El Floridita Bar)는 헤 아재가 가장 즐겨 마시던 칵테일 다이끼리 (Daiquiri : 럼주 슬러쉬)로 유명한 곳으로 ‘내 다이끼리는 플로리디따에 있다’라고 쓴 간판을 걸고 전 세계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을 꼬시고 있다. 

 

이른 아침이지만 가계문만 열었으면 헤 아재표 다이끼리로 해장하고 하루 일정을 시작하려는데 가게 문은 닫혀 있고 앞뜰에는 단체 관광객들이 인증샷을 찍느라 복작복작하다. 오비스뽀 거리가 시작되는 코너에 위치한 연분홍색 건물로 색상부터가 남다르게 튀는 이곳에서 다이끼리는 이따 마시기로 하고 다음 행선지인 보데기따 바(La Bodeguita bar)를 찾아 오비스뽀 거리로 들어선다.

 

       

   헤밍웨이가 가장 좋아했던 Bar 보데기따 델 메디오.

처음 이곳을 찾았을 당시에는 바가 아니라 잡화점이었으나 헤밍웨이에게 술과 음식을 팔고 나서 1942년에야 Bar로 영업을 시작하였다. 헤 아재 이곳 저곳 엄청 껄떡대며 다녔나 본데 단골은 한 집으로 만들어야 서비스 팍팍인데.

 

                         

          

       오비스뽀 거리의 기념품 가계에는 앙증스러운 기념품들이 다양하게 진열되어 있다. 

 

이 거리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은 기념품 가게인데 목각 인형, 마그네틱, 악세서리 등 종류가 다양하고 드문드문 있는 보석상점에는 각국에서 온 여성 관광객들이 낭군님 지갑을 열게 하려고 성업 중이다. 

 

나는 해외 여행할 때마다 길거리 화가가 그린 소품을 모으는 것이 취미로 화방 몇 군데 들렸는데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 포기할 즈음 내 눈에 쏙 들어오는 작품이 있어 흥정을 하는데 꼭 사야지 하는 내 마음이 주인에게 들켰는지 가격 흥정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나도 이런 거래 짬 밥이 얼마인데 관 둬. 짜샤’

 

근처 다른 화방을 찾았는데 좀 전에 봤던 그림이 자꾸 생각나서 건성으로 몇 개의 그림을 보는 등 마는 둥 하고 나오는데 건너편에서 화방 주인이 손짓을 한다. 잠깐의 가격 실랑이는 있었지만 둘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가격으로 기분 좋게 득템 하였는데 지금도 그림의 의미를 정확히 모르는 그 때 샀던 초현실주의 작품은 내 서재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보데기따 바는 좁은 뒷골목에 위치하여 있지만 누구에게 묻지 않아도 좁은 골목을 가득 메우고 서성대는 외국인 관광객들만으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다행스럽게 영업 중이라 이병헌 배우의 ‘모히또에 가서 몰디브 한잔 할까?’라는 엉뚱한 대사로 유명해진 모히또를 마셔보려는 데 어느 사이에 꽉 찬 단체 관광객들로 좁은 가게 안으로는 발을 딛기도 힘들 정도이다. 

 

        

                                  

               

        모히또는 럼주에 탄산수와 민트를 넣는데 맛은 그다지...

 

‘모히또는 여기서 다이끼리는 플로리디따에서’라는 헤 아재의 친필 메모를 액자에 걸어 놓고 노골적인 달러벌이를 하고 있다. ‘혹시 헤 아재가 술 값 대신 한 장 써 준 것이 아닐까’하는 찌질이의 합리적 의심이 모히또를 꼭 여기서 맛보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눈도장만 찍고 과감히 돌아선다. 

 

스페인이 식민통치를 하였던 남미의 여러 국가를 다녀 보면 마을의 중심에 광장을 만들고 그 주위에 그럴듯한 성당 그리고 유명 인사들의 동상 있듯이 아바나에도 대성당 광장(Plaza de la Catedral)을 끼고 바로크 양식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이 있다. 

 

           

         아바나 대성당

18세기 바로크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평가된다. 쿠바를 떠나는 날 이른 아침에 한번 더 보려 왔는데 빨간 우산을 쓴 여성으로 색다른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성당 광장의 야외서점

활달, 쾌활이 지나쳐 조금은 정신머리가 사나운 아바나에서 고적한 뒷골목의 감성으로 도시의 품격을 높여 준 반가운 서점들이다.

 

이 성당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지 오래되어 조금은 초췌한 모습이지만 바로크 양식의 화려함은 그대로 지니고 있다. 광장 한편에는 야외 서점들이 늘어서 있고 그늘이 드리워진 벤치에서 독서하는 시민들을 보니 여러 나라에서 온 인종 전시장인 오비스뽀 거리의 번잡함과는 달리 단아한 아바나 뒷골목 정취가 물씬 느껴진다. 

 

헤 아재가 아바나에서 집을 구하기 전에 장기 투숙을 하면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를 집필하였던 암보스 문도스 호텔(Ambos Mundos Hotel)은 짙은 분홍색의 5층건물로 보데기따 바에서는 걸어서 5분도 채 안되는 거리에 위치하여 있다. 

 

                

       암모스 문도스 호텔

511호 방에서 헤 아재가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를 집필하였다고 유명해진 호텔인데 돈독이 잔뜩 올라 있어 헤 아재 쓰던 물건을 보는 것도 돈을 내야 된다니 뒷맛이 씁쓸하다.  

호텔 안을 들여다보는 저 분도 입장료가 얼마인지?’ 몰라 문 앞에서 어정쩡하게 눈치를 살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곳 역시 로비에는 온통 헤 아재의 사진들과 친필 사인 액자로 도배를 하고 있고 5층 헤 아재가 머물렀던 방은 박물관에 전시된 오래된 유물처럼 그가 쓰던 타자기, 안경 그리고 친필 원고들로 꾸며 놓고 입장료를 받고 있는데 자본주의의 돈맛에 푹 빠져 있는 듯하여 기분이 썩 개운치가 않다. 

 

이 호텔의 하이라이트는 헤 아재의 방을 발아래로 깔고 있는 옥상의 루프트 탑 카페로 사방으로 가리는 것 없이 탁 트인 전망이 끝내준다. 특히 바다 건너 모로성, 하얀 예수상 그리고 호텔 근처의 성당들을 바라보며 시원한 맥주로 도를 넘어선 상술로 상처받은 마음의 응어리를 씻어 버린다. 

 

아바나 시내의 헤 아재 놀이터(?)는 얼추 보았기에 엊저녁 공항에서 민박집까지 태워다 준 친절한 헤수스 씨(Jesus의 스페인식 발음으로 나는 그를 ‘지저스’라 부르기로 하였다.)와 만나기로 약속한 플로리디따 바로 가려면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 왔던 길을 꺼꾸로 되짚어 가면서 다시 들려 보기로 하였다. 

 

        

   Mr. Jesus와 통역을 맡았던 그의 누이

사람 좋아 다시 가고 싶은 쿠바라는 나의 마음을 굳히는데 일조를 한 두 분께 감사드린다

 

보데기따 바에서는 조금 전과는 달리 올드 팝송이 흘러나오고 빈 좌석도 보여 잽싸게 자리를 차지하고 유명하다는 헤 아재의 모히또를 시켰는데. . . 처음 마셔보니 맛은 잘 모르겠지만 가격은 다른 바에 비해 비싸다. 

 

우째 아냐꼬? 합석하였던 젊은 커플이 맛은 그저 그런데 다른 바보다 가격은 double이란다. ‘언제 여기를 또 오겠냐’하고 다시 찾아 온 내 탓이다. 

 

괜히 뭔가 털린 듯한 기분으로 터덜거리며 오비스뽀 거리를 걷는데 아까 그림을 샀던 화방 주인이 반갑게 아는 척을 하며 손짓을 한다. 기분도 꿀꿀한데 그림이나 하나 더 살까 해서 화방으로 갔더니 꽈배기 비슷한 튀김과자를 주면서 먹으란다. 

 

아침부터 쏴 돌아다니며 맥주, 모히또 같은 물 종류만 마셔서 출출하였는데 마침 요기를 하게 되어 염치 불구하고 두서너 개 집어먹고 ‘1달러의 행복’ 하회탈 열쇠고리로 염치를 대신하였다.  

 

   

      야외 책방과 깨진 종.

정열로 대표되는 아바나에 대한 선입견을 깬 한 장면으로 아바나 시청에 예술을 쪼메 아는 공무원들이 있나벼.

             

화방 코 앞에 있는 플로리디따 바에서도 봉고, 기타, 짝짝이 소리가 어울린 신나는 땡고 음악이 흘러나오고 바에도 손님들이 음악에 맞추어 흥을 자가 발전하는 모습들이 보인다. 렌터카 기사인 지저스가 올 때까지 여기서 시간을 죽이기로 마음먹고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다이끼리를 시켰다. 

 

이곳의 벽도 앞서 다녔던 두 곳과 마찬가지로 헤 아재 관련 액자들이 걸려 있는데 ‘내 다이끼리는 플로리디따에 있다’라는 친필 사인 액자가 눈에 들어온다. 이곳이 다른 곳보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이유는 도심과 가까운 위치의 장점도 있지만 카운터 구석자리에 깊게 파인 이마 주름과 구렛나루로 덥수룩한 매력 만점의 헤 아재 동상이 있어 이곳을 방문한 거개가 헤 아재와 어깨동무한 인증샷을 찍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오는 날이 장날이라고 헤 아재 동상을 더 멋지게 만들려고 미용(?)을 한다며 쇠줄로 접근을 막아 헤 아재와는 눈인사만 하고 헤어져야 되어 바텐더에게 인증샷을 찍지 못하니 다이끼리 가격을 깎아달라 어거지를 쓰니 내일 다시 오면 다이끼리를 원하는 만큼 공짜로 마시라며 농으로 응수를 한다. 

 

헤 아재는 독한 것을 선호해서 자기네 가계의 다이끼리에는 다른 가계의 그것보다 럼주를 듬뿍 넣는다고 바텐더가 알려준다. 

‘어쩐지 취기가 빠르게 오른다 했더니 그런 영업비밀이 있었구먼.’ 

 

지저스의 세심한 배려로 자기 차보다 상태가 좋은 친구의 차도 빌리고 자기가 영어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니 영어 통역으로 사촌 누이까지 대동을 하였다. 나는 어제 탔던 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웬 차가 내 앞에 서더니 손짓을 하는데 차종도 다르지 앞에는 웬 중년 여성이 앉아 있어 무심하게 쳐다보는데 “Mr. Han”하며 주위 사람들이 놀라서 쳐다볼 정도의 큰 소리로 나를 부른다. 

 

차에 오르니 통역 누님이 저간의 사정 이야기를 하면서 가고 싶은 곳을 말하라고 하여 엊저녁 스페인어로 적어 놓았던 쪽지를 전해주며 시간을 내어 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다. 

 

우리는 도심에서 동쪽으로 10km정도 떨어진 <노인과 바다>의 배경이 되었던 어촌마을 꼬히마르(Cojimar)로 향했다. 아바나 시내에서 해저터널을 건너자마자 좌측으로는 카리브해에서 쳐들어오는 적들로부터 아바나를 지킬 목적으로 지어진 모로성이 있고 이곳에서 7km를 더 달려야 꼬히마르에 도착할 수 있다. 

 

      

       헤 아재의 역작 ‘노인과 바다’의 실제 배경이 되었던 한적한 어촌 마을 꼬히마르 전경.

그는 쿠바에서 추방되기 전까지 이곳에서 청새치 낚시를 즐겼으며 소설 속 노인의 실제 

모델이었던 그레고리 선장과 친분을 나누곤 하였다

 

꼬히마르는 소설에서 묘사된 그대로의 모습으로 개발이라는 단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어촌마을로 마을 어귀에 관광버스 서너 대가 주차되어 있어 단체 관광객들로 붐빌 것 같아 근처 해안가에서 시간을 죽이다 관광객들이 빠진 후 조금은 한가한 시간에 방문하기로 하였다. 

 

꼬히마르 앞바다를 보며 멍을 때리다 보니 해님도 힘에 부치는지 서쪽으로 서서히 떨어지고 있다. 나는 우리 차가 주차된 해안가를 따라 한참을 걸어서 꼬히마르 마을 어귀에 도착하였으나 헤 아재와 관련된 특별한 것이 보이지를 않아 혹시 잘못 왔나 해서 지저스 씨가 오기를 기다리며 어정거리고 있는데 길을 지나던 꼬맹이 남매가 아는 척을 하며 “헤밍웨이, 헤밍웨이!”하며 자기들을 따라오라며 앞장을 선다. 

 

         

   꼬히마르 두 요정

지금은 많이 컸겠지? 그 때 너희와의 만남을 영원히 간직할께. 

 

단체 관광객들이 철수한 자그만 어촌마을에는 저녁노을이 깃들며 적막감까지 들이치는데 헤 아재가 창밖으로 바다를 보며 글을 섰다는 떼라자 식당(La Terraza)이 보이고 그 뒤편으로 자그맣게 헤 아재의 흉상이 보인다. 

 

         

  떼라자 식당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앉아 글도 쓰고 동네 어부들과 한잔하였던 식당인데 관광객을 상대로 음식값이 턱없이 비싸게 받고 있다. 

                       

       

    헤 아재가 늘 앉았다는 떼라자 식당의 창문이 열려져 있다 (위)

그 자리에서 보았을 별 볼일 없는 꼬히마르 어촌마을 앞바다이다.  

 

식당으로 들어서니 헤 아재가 늘 앉아서 글을 섰다는 창가의 좌석만 비어 있고 식당이 만석인 것을 보니 마을 어귀 주차장에 남아있던 버스의 관광객들이 이곳에서 저녁식사를 하는 것 같아 빈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다 자리가 없어 우선 헤 아재 자리에서 보이는 바다 뷰를 사진에 담으려 하니 식사를 하여야만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며 종업원이 제지를 한다. 

 

오늘 하루 종일 헤 아재 발자취를 쫓다가 마음이 상해 있던 터라 그 종업원과 푸닥거리 한판을 하였다. 

“누가 먹지 않겠다고 했어? 그럼 빨리 내가 앉을 자리를 마련해줘.”

 

주인인 듯 나이 지긋한 분이 사과와 함께 앞에 보이는 헤 아재 흉상 근처에서 기다리면 곧 부르겠다고 하는데 나보다 연배도 높으신 분이 점잖게 양해를 구하는데 내 고집만 피울 수 없어 물러나오는데 속에서는 열불이 터져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는다. 

 

씩씩거리며 흉상 있는 곳에 갔더니 나를 안내해 준 꼬맹이 남매가 친구들과 뭐를 하는지 남의 속도 모르고 까르륵거리며 좋아 죽는다. 

 

              

 

                   

          꼬히마르의 헤 아재 흉상

지인이었던 선장이 자기 배의 프로펠러를 녹여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말년의 사진과 

아주 비슷하게 만들어진 것을 보니 실력 있는 조각가가 만든 것 같다.

어렵게 찾아온 이곳에 기대에는 못 미치지만 이 흉상마저 없었으면 욕을 바가지로

먹었을 것이다. 

 

 

‘엥. 그런데 이게 꼬히마르에 있다는 헤 아재 흉상이라는 거야?’

헤 아재의 흉상은 자기 이름과는 걸맞지 않게 검소하다 못해 초라해서 대충 세운 콘크리트 기둥에 얹혀진 둥그런 지붕 아래에서 깊은 고민이 있는 듯한 얼굴로 자신이 자주 갔던 떼라자 식당을 쳐다보고 있다. 

 

이 흉상도 헤 아재를 아는 선장이 자기 어선의 프로펠러를 녹여서 이곳에 만들었다고 하는데 기대에 못 미치는 이 흉상이라도 없었으면 멀리서 찾아온 관광객들이 섭섭한 마음을 넘어 욕 하며 발길을 돌렸을 것이다. 대중교통으로는 접근도 안되는 자그만 어촌마을까지 와서 여느 바다와 거기가 거기인 꼬히마르 앞바다, 바다로 소심하게 뻗어 있는 작은 선착장, 낚시대를 늘어뜨린 몇 명의 어부 그리고 떼라자 식당이 이 마을의 전부였을 테니 말이다. 

 

              

 

흉상 앞으로는 적의 공격을 받아 상처입은 십자군 성채 같은 모양의 망루가 있고 그 뒤로 초라한 선착장이 길게 늘어져 있는데 몇몇 강태공들이 낚시를 드리고 있다. 헤 아재 흉상, 꼬맹이 남매 그리고 주변 사진을 몇 장 찍고 선착장의 강태공을 만나러 가는데 어느 사이에 어둠이 내려앉아 주위가 어둑어둑하다. 

 

선착장에 도착하여 잡은 고기들을 보니 꼬맹이 물고기 몇 마리가 플라스틱 통속에서 거친 카리브해 출신 답게 힘차게 수영을 하고 있다. 아마 자기 옆지기한테 저녁거리 구해왔다는 칭찬 한번 받아보려 늦게까지 용쓰고 있는 모습이 나와 흡사해 마음이 짠하다. 선착장에서 떼라자 식당을 바라보니 헤 아재가 늘 앉았다던 창문이 정면으로 보이는 것을 보니 그 자리가 명당자리임이 확실하다.

 

 

꼬맹이 남자동생이 헐레벌떡 뛰어와서 뭐라고 하며 손가락질을 하여 봤더니 헤 아재 흉상 있는 곳에서 식당 종업원이 나를 기다리고 있어 손짓으로 먹지 않겠다는 표시를 하고 해 가 떨어지도록 목표량을 못 채워 귀가도 못하는 강태공과 친한 척하며 종업원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무시하며 사소한 복수를 한다.

 

나를 데리러 이곳까지 뛰어와 아직도 숨을 할딱거리는 꼬맹이에게 딱히 보답할 방법을 찾던 중 문뜩 마을 입구에 있는 구멍가계 생각이 나서 얼굴 표정과 손짓으로 가계로 가자고 하였더니 어찌 알아들었는지 내 손을 잡고 앞장선다. 

 

나를 기다리던 지저스에게 애들 과자나 사탕을 사주고 싶다며 구멍가계로 앞장 서라하고 나는 꼬맹이 남매와 손을 잡고 콧노래를 부르며 떼라자 식당을 지나는데 주인아저씨가 나와서 다시 사과를 하며 식당으로 들어와 사진을 찍으라 하여 나도 조금 전에 화를 내어 미안하게 되었다는 사과와 함께 정중한 거절로 또 한번의 복수(?)를 하였다.

 

구멍가계에는 다양한 먹거리가 없지만 꼬맹이 남매가 직접 고른 사탕과 과자를 선물하니 뭔가를 해준 듯 마음이 뿌듯하다. 오늘의 불미스러웠던 일들은 꼬히마르 앞바다에 띄워 보내고 명랑 꼬맹이 남매, 애잔 강태공과의 만남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한 채 아바나 말레꼰 해변의 깜깜한 밤문화를 살피러 간다.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걸음마를 떼기도 전에 하늘나라로 간 아가의 신발을 팝니다.’ 

쿠바 국민이 얼마나 어렵게 사는 것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인데 지도자의 역할이 얼마나 막중한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Eco-Times 한용성 여행작가 / 글.촬영 

[前 금호타이어 사장. 現 케이프투자증권(주) 고문]

 

생태환경뉴스 Eco-Times / 홈페이지: ee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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